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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친문도 친박도 아닌 자의 슬픔

김나래 정치부 차장


4일 공개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은 보수 진영의 전투력을 떨어뜨려도 한참 떨어뜨릴 듯하다. 그나마 ‘탄핵’을 언급하지 않았으니 박 전 대통령이 항복선언을 한 것이란 시각도 있지만, 그 편지 자체가 역사의 퇴행이자 반동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보수 진영의 많은 이들이 대통합을 내걸고 기울여온 노력에 보란 듯이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정 미래 혁신’을 기치로 총선을 치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공천 과정이나 인재 영입을 통해 데려온 인물을 보면 안타깝게도 미래와 혁신의 향기를 느낄 수가 없다. 최근 시작된 비례 정당 논의까지 보고 있자니, 20대 국회의 마지막 순간까지 여야가 한국 정치의 밑바닥이 어디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경쟁을 하는 듯하다. 특히 최근 비례 정당을 둘러싼 민주당의 태도는 지지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민주당 골수 지지자인 지인은 너무 화가 난다고 했다. 꼼수를 쓰는 미래통합당이 더 문제인 것도 알지만, 그렇다고 민주당도 같이 꼼수를 부려야 하는 거냐고 물었다. 정치와 도덕의 조화는 인류 역사상 늘 난제였음을 고려하더라도, 비겁하기 짝이 없다고 했다. 차라리 통합당이 미래한국당을 만들었을 때 선거법 개정 취지가 왜곡됐고, 선거법 개정의 실패를 인정하면서 답을 찾자고 했으면 딱한 마음은 들었을지언정 배신감은 느끼진 않았을 거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사과는 안 하고 자꾸 변명만 늘어놓는다. 우리보다 더 나쁜 야당이 있는데, 왜 자꾸 우리한테만 잘못한다고 그러느냐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치 “쟤가 더 나쁘잖아요” 하며 떼쓰는 어린애 같아 안타깝다. 조국 법무부 장관 문제가 터졌을 때는 “더 나쁜 자들도 장관이 됐는데, 불법도 아닌 거로 왜 자꾸 시비를 거느냐”고 했다. 그러나 이번엔 비례 정당과 관련해서 “우리가 하려는 비례연합정당은 미래한국당과는 다르잖아요”라며 자꾸 이해해 달라고 한다.

하지만 촛불을 들었던 많은 시민이 보고 싶었던 건, 야당복 타령이나 하며 안주하다 문제가 생기면 야당 탓이나 늘어놓는 민주당이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보다는 낫잖아요’라고 (이마저도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늘고 있음은 논외로 하더라도), 그렇게 탄핵당한 박근혜정부보다는 낫다는 소리를 들을 문재인정부를 기대한 게 아니었다.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정부가 역대 어느 정부보다 더 잘하길 바랐던 이들의 마음에 이렇게 하루하루 실망감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그래놓고 또다시 박근혜 편이냐, 문재인 편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이제는 미래와 혁신을 짊어질 세력이 누구인지 가려봐 달라고 하길 바랐다. 하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당신은 누구 편이냐고 묻고 있다. 듣고 있는 국민의 마음은 무너진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누구 편인지 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문빠가 될 수도, 태극기로 갈 수도 없는 상식적인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럼에도 문재인정부의 성공을 바랐던 이들의 마음은 대체 어디에 두어야 하나. 민주당이 믿고 있는 것처럼, 여전히 많은 사람은 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이 1당이 되면 안 된다는 민주당의 주장에 동의할 거다. 하지만 이런 질문이 자꾸 고개를 쳐들고 있음을 민주당은 알까. “저쪽이 아닌 건 알겠어요. 그런데 민주당을 제1당을 시켜주면 무얼 하겠다는 건지, 민주당이 1당이 되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모르겠어요.” 아직도 일말의 기대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민주당이 답을 내놓아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김나래 정치부 차장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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