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을 여행하는 국민에게 국가가 발행하는 신분증. 자국의 영토를 떠나 세계인으로서 존재하게 하고, 해외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근거. 여권이다. 그중에서도 대한민국 여권은 가치가 매우 높다. 한국 여권만 있으면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를 자유롭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컨설팅 그룹 헨리앤드파트너스는 분기마다 국제항공운송협회의 여행정보 데이터를 바탕으로 ‘헨리 여권지수’ 순위를 발표한다. 사전 비자 없이 방문 가능한 외국 국가 수, 국가 신뢰도 등을 고려한다. 올해 초 발표된 여권지수에서 한국은 전 세계 199개국 중 일본 싱가포르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한국 여권으로 갈 수 있는 무비자 입국 가능 국가가 무려 189개다. 대한민국 여권은 우리 국민의 어깨를 으쓱하게 했다.

그런데 불과 한두 달 사이, 대한민국 여권의 가치가 급락했다. 모든 나라가 환영하는 나라에서 기피 국가가 되어 버렸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부터다. 중국에 이어 확진자 수 2위인 한국. 여기에서 왔다는 이유로 입국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나라가 매일 같이 늘고 있는데, 무려 100개국이 넘었다. 전 세계의 절반 정도가 한국인을 꺼리는 심각한 상황이 된 것이다. 급기야 일본이 한국에서 오는 입국자를 2주간 격리하겠다는 방침을 일방 통보해 왔다. 설상가상, 미국도 한국인 입국 제한 조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고민 중이다.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해당 국가의 조치를 뭐라 할 수도 없다. 그저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확인할 뿐이다. 해외에서 ‘코리아’를 ‘코로나’로 부른다는 얘기만은 가짜뉴스였으면 좋겠다. “나라가 약하고 가난하면 개인이 아무리 잘나고 잘 입어도 누더기를 입은 것 같다. 반대로 개인이 훌륭한 나라를 두면 어디 가서 비단 옷을 입은 것 같은 대우를 받는다. 그러한 점이 축약된 사물, 즉 내 얼굴이고 내 이름인 것이 바로 대한민국 문장이 찍힌 여권이다.”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은 ‘여권의 탄생’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 여권이 너무도 초라해진 요즘이다.

한승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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