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얼굴은 이틀째 수염을 깎지 않아 덥수룩했고, 다른 하나는 화장을 하지 않은 채였다. 가까운 사이라도 평소라면 보기 힘든 모습이다. 마스크를 쓴 덕분에 얼굴을 내보일 일이 온종일 없어서였다. 마치 평생 얼굴에 마스크를 써온 것처럼, 주중에 만난 지인들은 이미 전염병이 닥친 하루를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온 지면과 방송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도배된 지 한 달이 넘게 지났다. 동료 기자들은 더는 쓸거리가 없다며 한숨을 내쉰다. 지난 목요일 부서 인사발령이 났지만, 결국 사회부에서의 마지막 근무일이던 이튿날까지도 관련 기사를 썼다.

모든 것엔 끝이 있는 법이다. 꽃샘추위가 지나고, 날이 더 따뜻해지면 아마도 바이러스의 기세는 자연스레 꺾일 테다. 별조차 없는 늦은 밤에야 퇴근하고서 내쉬던 간호사의 한숨도, 빚을 얻어 임대료를 내야겠다던 명동 상인의 탄식도 줄어들 거다. 학교와 어린이집·유치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은 교실에서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 수 있을 테고, 재택근무로 쥐죽은 듯 조용해진 사무실도 다시 활기를 찾을 것이다. 마스크를 벗은 지인들도 부지런히 수염을 깎고 또 화장을 한 얼굴로 출근할 테다.

그리 쉽게 회복될 수 없는 것도 있다. 불과 한 달 전까지 전염병 국내 전파의 원인처럼 지목됐던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중국 동포들이 그렇다. 가사도우미와 간병인, 일용직 노동자 등 사회의 약한 고리에 놓인 이들에게 수개월간 편견에 찬 혐오발언이 쏟아졌지만, 제대로 사과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작 8일 낮까지 대림동에서 발견된 확진자는 2명이고, 그나마도 중국 동포가 아니다. 외려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 중 하나인 강남구가 서울 시내 확진자 수 2위다. 대림동이 속한 영등포구는 중하위권이다. 별 이유 없이 비난과 욕설을 견뎌야 했던 대림동 사람들에게 전염병이 지나간 뒤 한국 사회는 어떤 의미가 될까.

‘대구 사태’ ‘대구 손절’ 등 특정 지역을 놓고 일부 인사가 내뱉은 발언 역시 다른 의미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다. 사태 초기에 정부가 기껏 혐오 표현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없앤 지역명 딱지를, 이들은 자신들과 같은 공화국 속 도시에 도로 옮겨 붙여놓았다. 각자도생보다 사회적 연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지만 그들에게는 낙인찍기로 얻을 정파적 이익이나 화풀이가 더 필요했나 보다. 그 이름표를 억지로 떠안은 도시의 시민들이 사태가 끝난 뒤 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지, 나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유럽 전근대의 종말을 불러온 흑사병은 많은 변화의 시발점이었다. 공중보건 개념이 비로소 싹터 특수병원시설이 만들어졌으며 격리와 오염원 제거 등 의미 있는 시도가 이뤄졌다. 그러나 당시에도 소수를 향한 핍박은 비슷한 형태로 벌어졌다. 유대인과 빈곤층, 이방인들은 전염병의 원인으로 지목돼 집단 린치를 당했다. 특히 유대인들은 교리상 위생에 철저해 병이 걸리지 않았음에도 외려 ‘악마와 손잡은’ 전염병 전파자로 명명됐다. 유대인을 말살해야 한다는 군중의 요구로 수천명이 화형을 당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같은 종류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그나마 2020년의 한국 사회가 그때와는 다르다고 안도할 사건도 있다. 마스크를 전염병 취약자에게 먼저 돌리자는 목소리다. 마스크 구하기에 혈안이 돼 각자도생하던 우리 사회가 아직 연대의 가능성을 완전히 잃진 않은 증거라 할 만하다. 비단 앞서 거론한 이들 외에도 우리 주변에는 전염병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생계 때문에 변함없이 일터로 향해야 하는 이웃들이 많다. 우리가 질병의 의학적 수습만큼이나 신경 써야 하는 건 그 이웃과 이웃, 즉 시민 사이 연대를 해치는 전근대적 혐오와 차별을 막는 일이다. 아직 끝이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이 기나긴 터널에서 빠져나올 것이다. 이후 남을 상처를 지금부터 생각해야 한다.

조효석 문화스포츠레저부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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