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랙홀이 나라를 집어삼켰다. 관계가 단절되고 경제는 멈춰섰다. 원망이 하늘을 찌르고 우울감은 깊어간다. 같은 고통이지만 느껴지는 무게는 다르다. 코로나19 사망자의 평균 나이는 71세였다. 고혈압과 당뇨를 앓던 사람이 많았다. 요양원, 실버타운, 장애인 시설, 임대아파트에서 집단감염이 나왔다. 끝없는 행렬을 마쳐도 마스크를 손에 쥐지 못한 시민의 허탈함은 가늠조차 어렵다.

재난은 불평등을 동반하고 키운다. 1995년 756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 시카고 폭염이 그랬다. 40도를 훌쩍 넘긴 살인적 열기가 빈곤층 독거노인을 덮쳤다. 에어컨도, 사회적 교류도 없던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감염병도 그렇다. 빈곤할수록, 고립될수록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는 차고 넘친다.

2009년 신종플루 당시 예방백신 처방도 불평등했다. 논쟁 끝에 감염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접종이 이뤄졌지만 확산 초기 불평등은 피할 수 없었다. 상위 10% 계층의 타미플루 처방 비율이 하위 10% 처방 비율보다 3~4배 높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2015년 메르스 때도 그랬다. 국립의료원이 전담 병원으로 지정되면서 기초수급 노인 환자, 노숙인 환자는 병실을 내줘야 했다. 무료 급식소가 폐쇄되면서 노인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거리를 헤맸다.

코로나19는 다를까. 장기 입원 환자가 많은 폐쇄 병동 고령 환자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정신병원 환자들이 무기력하게 쓰러졌다. 병실을 못 구해 자가격리 중 숨진 환자들은 기저질환이 있던 고령층이었다. 감염병을 겪는 것마저 불평등하다는 탄식이 나왔다.

‘사회적 거리를 두자’.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필수 행동지침이다. 하지만 ‘사회적 셧다운’이 가져올 부작용을 고민하는 사람은 드물다. 재난과 감염병이 뼈와 살을 짓누른 대상은 취약계층이다. 노인, 장애인, 아동, 저소득계층은 고립무원에 방치된 사회적 난민이 됐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이들에겐 독약이 된다. 사회적 셧다운이 견고해질수록 경로당, 복지관을 빼앗긴 노인들의 소외감은 증폭된다. 방역은 강화되지만 사회적 안전망은 헐거워진다.

마스크 장사진 대열에도 어김없이 취약계층이 숨어 있다. 누군가는 온라인 매크로를 돌려 손쉽게 마스크를 쥐지만, 이들의 속절없는 기다림에 마스크를 보장해줄 마트와 약국은 없다. 디지털 시대의 민낯이다. 편리한 온라인 유통 전략이 필요하지만, 소셜커머스 기업에만 이 과업을 맡길 수 없는 이유다. 취약계층은 디지털 소외계층이 되고, 결국 건강과 안전에서 소외된다.

정부의 안일, 무능 행정은 끝이 없다. 오락가락 마스크 대책이 대표적 사례지만, 초기에 감염병을 척결하지 못한 무능은 두고두고 역사에 남을 것이다. 더 뼈아픈 점은 과거 방역 경험이 던져준 소중한 교훈을 박제화시켰다는 것이다. 국가 재난과 감염 위기는 불평등하다는 것. 아프고 늙고 돈 없는 사람들의 생명권과 삶의 가치는 경시된다는 것.

중증 환자에게 병실을 우선 배정하고, 취약계층에게 마스크를 우선 보급하는 ‘사회학적 방역’은 훨씬 빨리 이뤄져야 했다. 확진자 예측 실패가 원죄지만, 모든 국민에게 동일하게 혜택을 주자는 이상주의가 득세하면서 국민 안전 프로젝트는 함정에 빠졌다.

너무 늦진 않았다. 건강 불평등을 전제로 방역체계를 재점검하자. 필요한 사회적 관계망을 시급히 복원하자. 돌봄 사각지대에 방치된 독거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특별 점검하자.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하면 어떨까. 의료봉사도 사회봉사도, 또 마스크 전달 봉사도 마다하지 말자. 웅크려 숨지 말고 뛰쳐나오자.

보건의료 전문가, 공무원, 기업가, 사회과학자 모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시민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 이 새로운 시민성의 장사진에 인공지능(AI) 전문가도 합류시키자. 미국, 중국 정보기술(IT) 기업이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AI를 활용해 감염 진단 키트를 만든 국내 기업도 나왔다. 100명의 전문가가 3개월 분석할 자료를 3시간 만에 처리한다니 희소식이다. 로봇공학자는 병원소독 로봇을 지원하면 어떨까. 그렇게 생명을 지키고 불평등을 줄이자.

위기는 기회다. 그간 실험해 보지 않은 우리의 잠재성을 한껏 끌어올릴 시간이다. 새로운 시민성과 자발주의, AI의 혁신성, 양보와 관용, 나도 감염자가 될 수 있다는 역지사지의 태도. 이렇게 우리는 기회를 만들고 희망의 교두보를 만들 수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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