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요나 (8) 의식 돌아왔지만 말 안 나와… 숨겨둔 ‘돈’ 생각에 끙끙

퇴원 후 귀만 열린 식물인간으로 지내며 상처 주는 말과 사람들 비정함에 분노

장요나 선교사가 2002년 5월 분당서울대병원에서 강직성 척추염으로 치료받고 있을 때 베트남 사역에 헌신한 김종찬 온누리교회 집사가 방문해 중보기도를 하고 있다.

집에 돌아오고 얼마 후 의식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귀도 열렸다. 하지만 다른 것은 전부 마비된 채였다. 의식은 또렷해서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입안에서 맴돌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음식은 삽관해 유동식 호스로 넣고 아내가 대소변을 받아냈다. 아내가 애처롭고 안쓰러웠지만 미안하다는 말도 못하고 뿌옇게 흐린 천장만 바라봐야 했다.

산 송장으로 누워있으면서 나는 사람들의 비정함을 톡톡히 맛봤다. 퇴원 초창기에는 병문안 오는 사람들로 집안이 항상 복작댔다. 교회 식구들은 날마다 찾아왔고 직원과 친구들, 사업차 알게 된 지인들까지도 내 병세가 궁금해 문턱이 닳도록 찾아왔다. 하지만 그중에 나를 진정으로 걱정해 준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다들 내가 걱정돼 한달음에 찾아온 것처럼 설레발을 떨었지만 식물인간이 된 내 모습을 보고는 배려 없는 말을 쏟아냈다.

내가 듣고 있을 거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내를 위로한답시고 이것저것 얘기하며 내 사생활을 까발렸다. 부산에서 여배우와 만난 것도 그때 아내에게 들켰다. 유행가를 유난히 좋아했던 나는 ‘여자의 일생’을 끝내주게 부르는 삼류 배우의 목소리에 홀딱 반해 한 달에 한 번씩 만났다. 밤새 노래를 들으며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눴다. 손목 한번 잡지 않은 사이였지만 아내가 들어서 좋을 일이 뭐가 있겠는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그들에게 나는 산 송장일 뿐이었다. 사흘이 멀다 하고 찾아와 울다 가시는 부모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아이고, 아비보다 먼저 가는 자식이 어디 있다니. 나보다 먼저 가려고 이렇게 고생을 하니” 하면서 슬피 우셨다. ‘아버지, 저 살고 싶어요. 저를 제일 잘 아시잖아요. 제발 살려주세요’라고 힘껏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오직 나만, 내가 다시 일어날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식물인간으로 누워있으면서도 사람들의 말에 상처를 받고 분노하며 병문안 오는 사람들과 소리 없는 전쟁을 벌였다. 그럴 때마다 결론은 숨겨둔 돈을 반드시 찾아야겠다는 거였다. 그것만이 내 마지막 자존심을 살려줄 것으로 생각했다.

사업을 하면서 나는 비자금을 꽤 많이 꿍쳐두었다. 땅문서와 비자금도 상당했고 이름을 달리한 통장도 여럿 됐다. 문제는 그걸 아무도 모른다는 거였다. 이렇게 맥없이 쓰러질 줄 알았다면 아내에게 말했을 텐데….

‘직원들이 금고 비밀번호를 알아내 벌써 땅과 건물을 다 처분한 건 아닐까.’ 아내에게 미처 말하지 못한 비자금 행방이 궁금해 밤에 잠이 안 왔다. 직원들이 알고도 시침을 떼는지 정말로 모르는지 쓸데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다 갔다.

비자금은 물 건너갔고 죽어라 일해 남 좋은 일만 한 셈이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8개월이 걸렸다. 나는 비자금을 한 푼이라도 건지겠다는 오기로 살았다. 식물인간이 되고 8개월 이상 나를 사로잡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돈’, 비자금이었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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