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n번방 관전자들이 불법영상물에 대해 서로 감상평을 나누며 실시간으로 대화하고 있다. 가끔은 운영자가 나서 입장료를 공지하거나 새 영상을 선전하기도 한다(맨오른쪽 사진). 텔레그램 n번방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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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은 서늘했고 섬뜩했다. 몸에 ‘노예’라는 글씨를 새긴 여성과 기괴한 자세를 취한 알몸의 여아들. 신상정보는 서비스로 제공됐고 “강간하자”는 말은 안부 인사처럼 오고 갔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현실. 살색 가득한 지옥이 한뼘 모바일 속에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n번방이었다.

지난해 정부는 불법 영상물을 유통하던 웹하드를 뿌리 뽑겠다고 칼을 빼들었다. 세상은 온갖 단톡방으로 시끄러웠고, 불법 영상물에 대한 분노로 여론은 터질 것 같았다. 궁금했다. 당국의 엄포에 그들은 정말 멈췄을까. 싸고 편하고 자극적인 ‘놀이’가 웹하드 몇 개 차단했다고 정말 중단됐을까. 그들은 멈춘 게 아니었다. 잠시 흩어졌을 뿐이었다. 범죄자들은 이내 새로운 은신처를 찾아냈다. 웹하드를 떠난 이들이 모여든 곳이 있었다. 신분 노출 위험이 없는 최상의 보안 시스템. 텔레그램이었다.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n번방에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n번방 문이 열리고 몇 분 만에 깨달았다. 더이상 취재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건 죽고 사는 문제였다. 텔레그램 특성상 증거는 실시간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경찰을 찾아갔다. 채증한 자료를 제공하면서 수사를 촉구하고 범인 검거를 도왔다. ‘텔레그램 n번방’은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20대 대학생 두 명이 집요하게 파헤쳤고 국민일보가 그 과정을 함께 지켜본, 악몽처럼 끔찍했던 텔레그램 n번방 잠복기. 그 6개월간의 이야기다.

n번방을 만나다

성 착취 문화 취재를 시작한 지난해 초. 음란물을 주고받는 사이트 ‘AV스눕’에서 의문의 링크를 발견했다. 텔레그램 경로였다. 전화번호와 이름만 입력하면 가입이 가능했다. 지난해 6월 잠복에 돌입했다. 수많은 방 중 와치맨이 관리하는 ‘고담방’이 메인이었다. 총 8개로 구성된 n번방에 입장하는 첫 관문이었다. 잠입 당시 2000명 정도가 모여 있었고, 고담방에서 파생된 방으로 넘어가 인증을 거쳐야만 n번방 링크를 받을 수 있었다. 음란물을 올리지 않거나 성희롱 대화에 참여하지 않으면 강제 퇴장 당했다. 특히 직접 찍은 불법 촬영물은 값을 잘 쳐줬다. n번방 프리패스 티켓과 같았다.

링크를 받는 방법은 다양했다. 방장 성향에 따라 달라졌다. 공유할 만한 음란물이 없었던 취재진이 망설이는 사이, 당시 방장이 ‘일본 애니메이션 여아 사진으로 프로필을 변경하면 입장시켜주겠다’는 비교적 너그러운(?) 제안을 했다. 서둘러 프로필을 바꾸고 링크를 받았다.

n번방은 차원이 달랐다. 그곳에는 갓갓의 ‘노예’들이 있었다. 대부분 중학생쯤으로 보였다. 개처럼 짖고 있는 아이들, 남성 공중화장실에서 나체로 바닥에 널브러진 아이들을 봤다. 지시에 따라 영상물을 직접 촬영해 보내는 것 같았다. 몇 개를 보고 나니 현실감각이 사라졌다. 그날 밤 지옥 같은 꿈을 꿨다.

n번방 창시자인 갓갓은 지난해 2월 n번방 권한을 모두 와치맨에게 넘기고 텔레그램 세계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갓갓이 만들고 와치맨이 운영하던 8개의 방마다 노예는 3~4명씩 있었다. 피해자는 모두 20~30명 정도였다. 이 방에서는 “이 정도면 누구 하나 죽어야 하는데 못 들어봄ㅋ 경찰들은 매일 처놀기만 하고” 같은 조롱의 말들이 오갔다.

온라인 넘어 오프라인으로

아이들이 노예로 전락하는 과정은 갓갓의 입을 통해 전해졌고 와치맨이 널리 알렸다. 주로 트위터에서 이뤄졌다. 경찰을 사칭하면서 겁을 주는 방식이다. ‘음란 게시물 신고가 접수됐으니 신상정보를 입력하고 조사에 응하라’는 문자를 보낸 뒤 답이 없으면 ‘부모님에게 연락하겠다’고 협박했다. 신상정보를 내놓으면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됐다. ‘신원 확인을 해야 하니 얼굴이 나온 사진을 보내라’고 했다가 전신사진, 가슴이 드러나는 사진 등을 요구했다. 멈칫하면 그 사이 알아낸 SNS 친구 목록을 캡처해 보냈다. ‘주변에 알리겠다’는 선전포고였다. 아이들은 그렇게 노예가 됐다.

이들은 노예를 오프라인으로 끌어내기도 했다. 이날은 취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날 중 하루였다. 지난해 여름,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숙박업소로 추정되는 방에 갇혀 있었고 성인 남성 여럿이 들어가 아이를 성폭행했다. 영상은 실시간으로 공유됐다. 채팅방은 ‘이게 바로 그루밍이지’라는 환호로 떠들썩했다. 영상이 뜰 때마다 캡처해 경찰에 넘겼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당하고 있을 아이에게는 이 모든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엽기물을 사랑한 박사

‘진짜’가 나타났다. ‘박사’는 갓갓과 와치맨이 사라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세력을 넓히기 시작했다. 그는 총 3개의 방을 운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중 하나는 150만원을 내야 입장이 가능했다.

박사의 범행을 확인할 수 있는 유사 노예방에 접근할 수 있었다. 철이 지나 더 이상 ‘신상’이 아닌 ‘박사의 작품’을 뒤늦게 공유하고 있었다. 박사는 하루에 노예 2명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을 공공연히 했는데 ‘모델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접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처음에는 수위가 높지 않은 사진을 요구했다. 채용 계약서를 써야 한다며 신상정보도 쉽게 손에 넣었다. 요구하는 사진의 수위는 높아졌고 거부하면 협박이 시작됐다.

박사는 특히 엽기적인 영상물을 사랑했다. 나체 상태에서 속옷을 머리에 뒤집어쓰라거나 발작을 일으키는 것처럼 눈을 뒤집고 몸을 파르르 떨며 영상을 찍으라는 요구를 했다. 이들은 모두 새끼손가락을 들고 있었다. 박사가 만든 작품이라는 그만의 범행 시그니처였다. 신체 일부에 ‘노예’ 등을 새긴 사진도 공통으로 요구했다. 역시 박사의 노예라는 인증이었다.

지난해 9월 와치맨은 갓갓처럼 돌연 자취를 감췄다. 텔레그램 내에서는 경찰에 체포됐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최근에는 사라졌던 갓갓이 복귀했다는 말이 돌았다. 와치맨의 말에 따르면 갓갓은 고등학생이라고 했다. 갓갓의 복귀를 말하는 이들은 그가 지난해 수능을 치르고 텔레그램 세계에 복귀해 n번방을 다시 운영한다고 했다. 역시 확인된 얘기는 아니었다.

노예방 아이들…그 방을 찾는 공범들

성 착취를 위한 방은 수두룩했다. 지인 사진을 불법 유포하며 능욕하는 방, 미성년자 나체 사진을 불법 촬영해 공유하는 방, 성적 가학 행위를 당하는 유아 포르노를 취급하는 방들이 하루에도 몇 개씩 생기고 또 사라졌다. ‘여교사방’ ‘여군방’ ‘여경방’ ‘여간호사방’ ‘여중생방’ ‘여아방’ 등이었다. 여교사방에 싫증을 느낀 관전자들이 모여 여경방을 만들고 더 큰 자극을 원하는 이들이 여아방을 만드는 식이었다.

잠복기간 동안 하루 평균 30개 정도의 방을 둘러봤다. 모든 방에는 기본적으로 수천명의 가해 남성이 참여하고 있었다. 확인한 최대 인원은 2만5000여명이다. 하루에 올라오는 피해자는 방마다 수백명. 피해자와의 접촉을 시도해본 적도 있었다. 대부분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하루만 지나면 없는 번호가 됐다. 지옥에 갇힌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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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사건
=지난해 초부터 텔레그램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 착취 사건으로 피해자는 주로 미성년자다. 피해자를 ‘노예’라고 부르며 음란물을 촬영하도록 협박한 뒤 이를 채팅방에 공유했다. ‘갓갓’이 시초였다. 그는 1번방부터 8번방까지 채팅방 8개(일명 n번방)를 만들었다. 갓갓은 지난해 2월 자신의 방을 ‘와치맨’에게 물려주고 돌연 자취를 감췄다. 와치맨은 그해 9월 잠적했다. 이들이 떠난 자리에 비슷한 형태의 방이 물밀 듯 생겨났다. 현재 ‘박사’의 방이 가장 악랄하다.

2회. “신검 받는 중ㅋ” 자기 덫에 걸린 놈
번외편. 노예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3회. ‘약한’ 남성일수록 성착취에 집착한다
4회. “우린 포르노 아니다” 함께 싸우는 여성들

특별취재팀(with 추적단 불꽃) onlinenews@kmib.co.kr

*피해 사례는 2차 가해를 우려해 독자가 n번방의 잔인성을 판단할 수 있는 수준으로 최소한도로 표현했습니다. 잠복취재를 유지하기 위해 기사는 익명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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