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요나 (9) “나 아직 살아있어!”… 산소 호흡기 뗄까 가슴 졸여

병세 악화되자 부모님도 포기… 그만 포기하자는 장모님 설득에도 아내는 끝까지 희망 버리지 않아

2002년 분당서울대병원에서 강직성 척추염 판정을 받은 장 선교사.

전신 마비가 된 지 석 달쯤 되자 자가 호흡이 곤란해져 산소호흡기를 달았다. 숨을 제대로 못 쉬자 위급 상황도 자주 발생했다. 목구멍에 숨이 걸리고 유동식도 넘어가지 못해 막혔다. 가래가 자주 끓어 병원에 실려 가곤 했다. 그때마다 마주하는 건 좌절이었다. 제일 비참했던 건 내 앞에서 나를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었다. 의사들의 냉정한 태도를 볼 때마다 살 수 있을 거란 실낱같은 희망이 툭툭 끊어졌다.

4개월쯤 지나자 부모님도 나를 포기하셨다. 내가 다시 깨어날 거라 기대하진 않으셨지만, 차마 아들을 보내지 못해 집에 오실 때마다 내 손을 붙잡고 우셨던 아버지도 결국 내 손을 놓으셨다. 그날 아버지가 내 이마에 얼굴을 맞대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아버지, 저 아직 살아있어요. 제발 포기하지 마세요.’

다급해진 내가 아버지를 애타게 불렀지만 돌아온 말은 ‘이제 편히 가라’였다. 마지막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은 아내였다. 생각해 보면 결혼해서 아내와 함께 산 세월이 5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일하기 바빠 밖으로만 도는 바람에 생과부로 살게 했는데 내가 집에 있어도 생과부 신세는 마찬가지라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아내가 조금씩 나를 소홀하게 대해도 서운하지 않았다. 나를 다루는 손길이 거칠어지고 신세타령이 늘어져도 섭섭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에 대한 확신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발단은 장모님이었다. 창졸간에 식물인간이 된 사위도 안타까우셨겠지만 곱게 키운 외동딸이 고생하는 게 마음이 아파 오실 때마다 눈물 바람이셨다. 그런데 그날은 분위기가 좀 달랐다.

“에미야, 장 서방 못 살겠다. 이제 그만 산소호흡기 떼고 포기하자.”

내 곁에서 훌쩍이던 장모님이 아내에게 무겁게 한마디 하셨다. 아내가 울면서 어떻게 그러냐며 남편이 불쌍해서 그렇게 못한다고 하자 장모님이 버럭 화를 내셨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언제까지 가망도 없는 사람을 붙들고 생지옥에서 살 거냐고 하셨지만, 아내는 울기만 했다. 장모님은 문을 박차고 나가 버리셨다.

당장이라도 산소 호흡기를 뗄 것 같은 장모님의 기세에 간이 오그라들었는데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니 안심이 됐다. 내 목숨은 내 소관이 아니란 생각을 하자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장모님과 아내가 마음만 바꿔 먹으면 언제든지 죽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아내가 두려웠다. 혹시라도 마음을 바꿔 산소 호흡기를 떼면 어쩌나, 아내의 한숨이 깊어지거나 신세타령이 길어질 때마다 가슴이 졸아들었다.

‘여보, 나 좀 살려줘. 나 죽지 않았어! 나 멀쩡해요. 내 겉 사람만 마비된 거야.’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 칠흑 같은 절망 속에서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불렀다. 10개월 동안 한 번도 부르지 않은 이름, 한 번도 떠올리지 않은 그분을 마지막 순간에 찾은 것이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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