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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추적기③] ‘약한’ 남성일수록 성착취에 집착한다

n번방에 잠입하다③ “여자라도 이기겠다” 방에 숨은 루저 26만명


미성년자, 노예, 가학적 콘텐츠. 지난해 여름 휴대전화의 텔레그램 n번방 알람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대화창을 열 때마다 심호흡을 해야 했다. 하루 동안 불법 유포되는 사진만 수백장이었고 성착취·여성혐오 발언은 초 단위로 오고 갔다. 그걸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깨달은 게 있다. n번방은 선정적인 음란물을 공유하는 일탈 공간이 아니다. 가해자들은 대부분 미성년자인 피해자를, 가장 무력한 노예의 상태로 만든 뒤, 가학적이고 엽기적인 콘텐츠를 스스로 생산하도록 만들었다. 자기 손으로 찍어 올렸으니 책임도 피해자에게 전가했다. 뒤틀린 가해 심리를 적나라하게 표출하는 반사회적인 집단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여자는 이긴다?…26만명의 루저들

n번방에서 여성을 부르는 흔한 명칭은 ‘XX개’다. ‘XX개’를 순화하면 ‘월경을 하는 물건’ 정도로 해석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 여성은 인격체가 아니라 욕구를 쏟아내는 대상일 뿐이다. 이런 비하에는 심리적 배경이 있다.

윤김지영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남성 무리에서 약하다고 배제되는 남성일수록 여성을 착취하는 데 집착한다”며 “현실에서 무시받는 남성들은 온라인에서라도 남성성을 인정받으려고 한다. 자신보다 약하다고 믿는 여성을 대상으로 정복욕을 분출한다”고 말했다. 온라인 성착취를 실시간 신고하는 여성단체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ReSET’도 “지금까지 확인한 가해자 대다수는 현실에서 떳떳한 성취를 이뤄본 적 없는 남성들”이라며 “현실에서 도망간 그들이 부담 없이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온라인으로 숨어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텔레그램방을 운영했던 A씨는 채팅방에서 자신이 공무원이라고 수시로 떠벌렸다. 특정 사안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면 “내가 공무원이라 아는데…”라는 말을 습관처럼 덧붙였다. 얼마 전 그가 검거됐다는 소식을 듣고 신원을 확인했다. 공무원은 아니었다. 주목할 대목은 그가 공무원이 아니라는 사실이 아니라 굳이 거짓말을 했다는 점이다. 실패한 자아를 ‘공무원’이란 타이틀로 포장하고 싶어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가해자들은 주로 미성년자를 노린다. 스스로 강하다고 느낄 수 있는, 여성 중에서도 가장 약자를 찾는 것이다.

이들은 내부에서 권력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우리는 여고생이 더 좋은데 왜 자꾸 유아만 올리느냐”며 다투는 식이다.

윤김 교수는 “텔레그램에서의 남성성은 여성을 얼마나 많이 착취해내는지를 통해 입증된다”고 말했다. 그걸 통해 서열이 정해진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추산에 따르면 n번방 사건에 연루된 ‘루저’가 26만명이 넘는다.

‘가출학생 연락’ 글 올려도 처벌해야

방법은 처벌밖에 없다. 잡힌다는 걸 아는 순간, 그들은 멈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처벌 수위를 높여 경각심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의제강간 연령 상향부터 짚었다. 법 재정비는 순차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의제강간 대상 연령을 높이는 것으로 미성년 성범죄 처벌 강화의 첫발을 뗄 수 있다고 했다.

의제강간이란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만 13세 미만 아동과 성행위를 할 경우 처벌하는 조항이다.

이 교수는 16세 이상으로 높일 것을 제안했다. 피해자가 그 범주에 든다면 합의가 이뤄졌든 자진했든 가해자를 엄벌해야 한다. 윤김 교수도 “디지털 성폭력 형량을 강화할 때, 특히 피해자가 미성년일 경우 가중처벌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미성년자를 유인하는 모든 행위를 처벌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인터넷에 ‘가출한 여중생 연락 주세요’라는 글을 올리면 그 이후의 행위가 뒤따르지 않아도 처벌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때 경찰에게는 함정수사 기법이 허용돼야 한다. 경찰이 유인 글을 올린 뒤 접근하는 남성을 체포할 수 있게 되면 가해자들은 범행에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이 과정이 순차적으로 이뤄진다면 차일드 트래피킹(아동 인신매매) 범죄가 집중되는 온라인 사이트가 선별된다”며 “개개인이 벌이는 범죄로 보지 말고 사이트 자체에 모든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찬물을 끼얹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범죄가 발생하기 전 사이트가 자체적으로 정화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교수는 “한편에는 산업을 죽인다고, 혁신을 방해한다고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럼 피해자를 대체 어떻게 구제하겠다는거냐”고 반문했다.

윤김 교수는 텔레그램의 역할과 국제 공조 수사를 말했다. 그는 “수사 당국이 나서서 텔레그램 본사에 공조를 요청하고 사측에서 먼저 긴급조치를 취하도록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며 “수사 당국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도 “특성상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성착취는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만큼 텔레그램 측의 협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가가 응답했다

수사기관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지난 2일 “텔레그램 등 온라인을 이용한 성착취물 유포가 돈벌이로 악용될 수 없도록 하겠다”며 “근본적으로 해결될 때까지 수사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1월 2일부터 한 달 동안 무려 21만9705명이 동의한 ‘성착취 사건인 n번방 사건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국제 공조 수사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에 대한 답변이다. 민 청장은 또 “다방면의 국제 공조를 추진하고 있다”며 “범죄 수익을 몰수하는 등의 방법으로 범죄 의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고 약속했다.

우선 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 이후가 더욱 중요하다. 처벌 수위를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윤김 교수는 “n번방 사건은 음란물유포죄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며 “반드시 성폭력으로 처벌돼야만 가해 행위에 부합하는 처벌 수위와 피해자 보호가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도 “문제 해결의 핵심은 처벌이다. 범죄가 드러나고 강하게 처벌된다는 걸 가해자가 아는 순간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1회. 텔레그램에 강간노예들이 있다
2회. “신검 받는 중ㅋ” 자기 덫에 걸린 놈
번외편. 노예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4회. “우린 포르노 아니다” 함께 싸우는 여성들

특별취재팀(with 추적단 불꽃) onlinenew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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