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운데에 있는 사진처럼 언제부턴가 도로에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색깔로 안내해 주는 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나처럼 내비게이션을 잘 못 보고 매번 경로를 이탈하는 운전자에게 이 선은 축복이다. 최근 이 색깔유도선에 대해 취재하면서 처음 아이디어를 낸 분을 수소문 끝에 찾을 수 있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이 색깔유도선이 생기기까진 엄청난 우여곡절이 있었다.

색깔유도선 설치를 처음 제안한 건 한국도로공사 윤석덕 차장이다. 어디서 이런 아이디어를 얻었냐고 물어봤더니 윤 차장은 고속도로에서 길을 잘못 들었던 경험을 설명했다. “안산분기점에서 외곽선 쪽으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인데 멍청하게 둔대분기점에서 목포 방향으로 가고 있더라고요. ‘도로의 전문가’인 제가 헷갈릴 정도니 뭔가 대책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죠.”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행동으로 옮기는 게 어려운 건데 윤 차장에겐 이 생각을 실현할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다. 안산분기점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오라’는 지사장의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밤새 고민하다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 갑자기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초등학생도 알게 하려면 길에 물감이나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면 어떨까!’

이때부터 전문가들에게 자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일단 가장 큰 걸림돌은 법이었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8조 2항(안전표지의 종류, 만드는 방식 및 설치 관리 기준)은 도로에 황색, 흰색, 청색, 적색 이외의 색을 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운전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어서다. 도로에 색깔유도선을 칠하면 법 위반으로 자칫 형사입건될 수 있었고, 주변에서도 너무 앞서가는 아이디어라며 적잖은 사람들이 반대했다.

그러나 윤 차장은 포기하지 않고 대책을 고민하다가 경찰에 협조를 구하기로 했다. 그는 당시 인천경찰청 11지구대에서 안산분기점을 담당하던 임용훈 경사(현 인천경찰청 경감)에게 문의했다. “당시 임 경사님이 ‘아주 좋은 생각이다.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다면 당연히 시도해야 한다’며 고마운 말씀을 해주셨어요. 도로에 색을 칠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교통 제안을 요청했고 얼마 후 인천경찰청 11지구대에서 승인 문서가 왔습니다.”

임시였긴 하지만 대한민국 1호 색깔유도선은 이런 과정을 거쳐 2012년 5월 서해안선 안산분기점에 생겼다. 우여곡절 끝에 색깔유도선을 만들었는데 효과가 어마어마했다. 연간 20여건 발생하던 안산분기점의 사고가 3건으로 줄었다. 그것도 색깔유도선이 잘 보이지 않는 7, 8월 장마철에.

그러나 색깔유도선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데는 실패했다. 관련 규정도 미비했고 너무 앞서가는 아이디어라는 평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색깔유도선은 사라지는 건가, 윤 차장도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흘러 2014년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온 전화였다. 본사 담당자는 “색깔유도선 아이디어가 이렇게 사라지는 게 아쉬우니 차라리 규정을 손봐서 이걸 확대해 보자”고 제안했다.

이후 한국도로공사는 색깔유도선을 시범적으로 설치하기 시작했다. 2017년에 당시 설치된 색깔유도선 76곳의 효과를 분석했는데 설치 후 교통사고가 27%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본격적으로 확대돼 지금은 고속도로 모든 분기점과 주요 나들목 등 364곳에 색깔유도선이 칠해졌다. 각종 커뮤니티에선 “이 색깔유도선을 처음 생각해낸 사람에게 상을 줘야 한다”며 난리다. 국토교통부는 ‘노면 색깔유도선 설치 및 관리 매뉴얼’을 제작해 관련 규칙을 정비했고 현재 관련 도로교통법 개정도 진행 중이다.

혁신은 이런 거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아이디어로 불편함을 덜어주는 것. 새 아이디어는 기존의 틀을 깨고 나와야 하기 때문에 항상 낯설고 법이나 제도가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승합차 호출 서비스 ‘타다’가 그랬다. 택시에 지친 승객들은 타다에 열광했지만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서비스라는 논란 때문에 항상 위태로웠다. 타다가 결국 다음 달 운영을 중단한다. 윤 차장의 작은 아이디어가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5년 만에 정착된 것처럼 혁신이 결코 쉽지 않은데 타다의 혁신은 법원의 ‘합법’ 판단에도 왜 멈춰서야 했을까. 25만 택시기사들이 표를 쥐고 있는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조금 달라졌을까.


이용상 뉴미디어팀장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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