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국경봉쇄 번지나…미국, 유럽 여행객 입국금지

EU “협의 없는 일방 조치” 반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수요일 프라임 타임인 오후 9시 워싱턴DC에 있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관련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무실 연설은 취임 후 두 번째이며 약 9분간 중계됐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앞으로 30일 동안 영국과 아일랜드를 제외한 모든 유럽 지역에서 들어오는 여행객의 미국 입국을 사실상 금지한다고 밝혔다. 유럽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가장 많은 이탈리아를 비롯해 독일 프랑스 등 26개국에 적용된다. 유럽 전체를 대상으로 한 입국 금지는 미국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세계 주요 국가들의 코로나19 대응책으로도 이례적인 초강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오후 9시(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뤄진 대국민 연설을 통해 “우리는 앞으로 30일 동안 유럽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여행을 중단할 것”이라며 “이 조치는 14일 0시부터 효력이 발생한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가 미국에 확산된 주범으로 유럽을 지목했다. 그는 “미국이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취한 것 같은 중국에 대한 입국 금지를 유럽이 취하지 않았다”면서 “코로나19 집단 발병지(클러스터)의 씨앗이 유럽을 다녀온 여행객들을 거쳐 미국에 뿌려졌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이 제한 조치는 영국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이 조치는 상황에 따라 조정될 것”이라며 “적절한 검사를 거친 미국인들은 예외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미국 노동자층이 돈 걱정 없이 집에 머무는 것을 보장하기 위해 전례가 없는, 재정 지원 긴급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의회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개인과 사업체에도 3개월 동안 세금 납부를 유예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 위기는 단지 한 국가로서, 한 세계로서 함께 극복할 일시적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강력한 조치들을 통해 시민 위협을 크게 줄이고 코로나19를 신속하게 물리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 직후 미 국무부는 후속 조치로 “코로나19의 세계적인 영향으로 미국 시민들에게 해외여행을 재고할 것을 권고한다”는 성명을 냈다. 금지가 아니라 권고이긴 하지만 코로나19 유입을 막기 위해 미국인들의 입국 및 출국도 통제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CNN은 유럽 입국금지 조치에 대해 “미국의 자가격리”라고 표현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 더 많은 혼란을 초래했으며 그가 급속히 확산되는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의문을 낳았다”고 혹평했다.

유럽연합(EU)은 “일방적 조치”라며 반발했다. EU는 성명을 통해 “미국의 결정은 일방적으로 협의 없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반대한다”며 “코로나19는 세계적 위기로 특정 대륙에 국한되지 않으며 일방적 조치보다는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 등은 유럽 외교관들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 발표 전 유럽 측과 정보를 공유하거나 조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이번 조치로 세계 각국의 국경 봉쇄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인도는 이날 밤 공지를 통해 “13일 정오(그리니치 표준시 기준)부터 다음 달 15일까지 외교관, 유엔 등 국제기구, 취업, 프로젝트 비자 등을 제외한 모든 비자의 효력이 정지된다”고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도 12일 EU 회원국 전체를 여행금지 국가로 지정하고, 이들 국가를 경유하거나 방문한 지 14일이 지나지 않은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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