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요나 (11) 10개월 만에 마비에서 풀려 입 떼자마자 “감림산…”

가족들 내가 움직이자 마지막 몸부림으로 생각… 깨어난 순간 “감림산기도원 가라” 들려

장요나 선교사가 1988년 경남 양산 감림산기도원에서 성경책을 읽고 있다.

나는 10개월 만에 다시 깨어났다. 내가 깨어났으리라고 상상도 못 한 가족은 죽기 전에 몸이 마지막으로 경련을 일으키는 건 줄 알고 황급히 구급차를 불렀다. 응급실에서 내가 마비에서 풀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때부터 회복에 속도가 붙었다. 산소호흡기와 유동식 투입용 호스를 떼고 이틀 만에 목구멍에 미음을 흘려 넣었다. 입가가 실룩거려 발음이 부정확했지만, 말도 할 수 있게 됐다. 처음 입을 떼자마자 나는 “감림산, 감림산”이라고 말했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감림산이 아니라 감림산기도원이었다. 몸이 깨어나면서부터 내 안에 ‘감림산기도원에 가라’는 음성이 들렸다.

경남 양산에 있는 기도원이었다. 회복이 빠르다고 해도 깨어난 지 고작 이틀이 지났을 뿐이었다. 10개월 동안 굳어 있던 몸이 풀리면서 온몸은 흐느적거렸고, 아직 힘을 받지 못한 다리를 세워놓으면 곧 허물어졌다. 한쪽 눈은 실명이 돼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1986년 봄 나는 부산에 사는 이모님께 연락했다. 택시를 불러 이모님과 함께 감림산기도원으로 향했다.

1년 만에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몸무게가 반으로 줄어 뼈에 가죽만 남았다. 이모와 몇 사람이 38㎏밖에 안 되는 나를 가뿐히 부축해 산비탈에 있는 기도원의 예배당으로 향했다. 이옥란 감림산기도원 원장님은 이모님의 등에 업혀 가는 나를 보고, 누가 감림산에 시체를 묻으려고 떠메고 온 줄 알았다고 했다.

이모와 사람들이 부축해 가는 동안 마음이 한없이 낮아졌다. 후회와 자책의 눈물이 옷 앞자락을 흠뻑 적셨다. ‘아 나는 탕자구나.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며 그것이 내 것인 줄 알고 자랑하며 살았구나.’

만약 죽음이 끝이라면 나는 하나님께 생명을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그 뒤에는 천국과 지옥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둘 중 한 곳에 가야 한다. 전신이 마비된 나를 보고 사람들은 죽었다 했지만, 내 영은 살아서 하늘나라를 자유롭게 오갔다.

천국은 그야말로 생명의 세계였다. 솜사탕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뭐라 규정할 수 없는 다채로운 색깔로 살아 움직이며 오케스트라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아무것도 해할 게 없고 오직 찬양과 감사만으로 충만한 세계,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셨다.

하나님의 보좌 옆에는 지옥이 있었다. 지옥도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찬양도 기쁨도 감사도 없었다. 고통과 아픔, 절규만이 가득했다. 소멸하지 않는 뜨거운 불이 사람들을 견딜 수 없게 했다. 그 불길 안에서 사람들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목말라했고 증오와 갈등으로 적의를 불태웠다. 인간의 추악한 본성만 남아있는 곳이 바로 지옥이었다.

지금도 지옥의 그 처참한 모습을 떠올리면 정신이 번쩍 든다. 절대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철저히 경험한 나는, 나를 믿을 수가 없었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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