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요나 (14) 선교사로 주님 부름 받고 꿈에도 그리던 베트남으로

신학교 졸업하고 목사 안수… 당시 베트남에선 비즈니스 방문만 허가, 도움 받아 사업가 신분으로 들어가

장요나 선교사가 베트남을 처음 방문한 1990년 1월 하노이 라탄호텔에서 시내를 바라보고 있다.

감림산기도원에서 서울로 올라와 바로 신학교에 들어갔다. 어려서부터 기독교대한감리교 소속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같은 교단의 신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나이 제한에 걸렸다. 그래서 규모는 작지만 예수교대한감리회 소속 신학교에 들어갔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도 받았다. 주님께서 베트남 선교사로 부르셨기 때문에 그것을 준비하면서 부흥사로 집회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한쪽 눈은 실명돼 찌그러져 있었다. 전신 마비의 흔적은 그렇게 내 몸에 남아있었다. 그걸 보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기적의 손길을 경험했고, 다 함께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

1990년 1월 23일 베트남에 도착했다. 한국을 떠난 지 일주일 만이었다. 그때는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를 맺기 전이었기 때문에 베트남을 방문하려면 특정 국가 허가서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그 허가서를 받으려면 국가공무원 두 사람이 보증을 서야 했고, 방문 목적도 뚜렷해야 했다.

나는 외교부에 특정 국가 허가서를 신청하고 그걸로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베트남 대사관이 있는 태국의 방콕으로 갔다. H그룹의 베트남 지사장 자격으로 한 달짜리 비즈니스 비자를 신청했다. 당시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비즈니스 업무 외에는 갈 수 없었다. 고맙게도 지인의 도움으로 서류를 갖췄다. 목적은 시장 조사, 체류 기간은 한 달. 제한된 조건이었지만 방콕에서 일주일을 기다려 비자를 받아 베트남 하노이로 들어갔다.

하노이는 1975년 통일되기 전 월맹의 수도였다. 민주주의를 경험한 호찌민보다 복음을 전하기 더 어려운 동토의 땅이다. 파월 장병으로 베트남 나트랑에 왔을 때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로 지리에 익숙했지만, 하노이에 대해선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첫 선교지로 하노이를 선택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했다.

국제공항 출입국 데스크를 겨우 통과해 시내에 있는 호텔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가로등 하나 없는 거리에는 자동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감림산기도원에서 내가 가야 할 곳이 베트남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베트남에 미쳐 있었다. 어디선가 베트남이라는 말만 들으면 무조건 달려가 사람을 만나고 자료를 얻었다. 그렇게 준비하고 꿈꾸던 곳에 5년 만에 왔으니 잠이 오겠는가. 마음에 설레어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잠깐 밖에 나가려고 1층으로 내려갔는데 입구에서 바로 저지를 당했다. 여행허가서가 없으면 호텔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했다. 비자를 보여줬지만, 소용없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여행허가서를 신청했지만, 발급받는 데 이틀이나 걸렸기 때문에 꼬박 48시간을 호텔에 갇혀 있었다. 호텔 문밖에 나간 것은 베트남에 도착한 지 사흘 만이었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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