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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춘래불사춘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바이러스 대공습으로 빼앗긴 한반도의 봄… 숨은 영웅들의 헌신 있기에 그래도 희망 있어

내일이면 밤보다 낮 길이가 길어진다는 춘분이다. 벽초 홍명희는 ‘임꺽정’에서 이즈음을 ‘절기가 경칩이 지나가고 춘분이 가까워 오는 때라 낮에는 봄뜻이 완구하되~’라고 썼다. 봄기운이 완전히 갖춰졌다는 얘기다. 쌀쌀했던 바람은 한결 부드러워지고 햇살도 따스해지고 있다. 개구리가 잠에서 깬다는 경칩을 뒤로하고 바야흐로 만물이 생동하는 시기다. 봄볕을 받아든 꽃봉오리는 갈수록 파란색을 띤다. 화려한 꽃무리를 차례로 수놓을 듯이. 이렇듯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봄 정취는 여간 아름답고 부드럽지 않다. 겨우내 신산의 세월을 견딘 보상으로 봄은 늘 흐드러진 꽃으로 세상에 축복을 가져다준다.

전국 방방곡곡에 기다리던 봄이 왔건만 마음은 여전히 혹독한 겨울이다. 모두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봄의 향취를 즐길 겨를이 없다. 코로나19의 위세에 눌려 꽃구경은 고사하고 계절의 변화조차 체감할 수 없다. 달갑지 않은 미세먼지의 공습으로 마스크 행렬로 넘쳐났던 요 몇 년 새의 고통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매화, 산수유가 앞다퉈 피었던 예전의 봄날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꽃은 변함없이 화사하게 피었지만 꽃길은 처량하기 그지없다. 잔뜩 웅크린 상춘객의 발길이 들지 않아서다. 바이러스의 공습에 한반도의 봄이 완전히 빼앗겼다고나 할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전국에서 열리던 봄꽃축제와 식목행사 등은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27일 개최 예정이던 진해 군항제가 대표적이다. 해마다 400여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 우리나라 대표 봄꽃축제인 이 행사는 1963년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취소됐다. 수도권 시민들에게 봄기운을 전하던 여의도 벚꽃축제도 올해는 볼 수 없게 됐다. 이 또한 2005년 개시 이후 처음이다. 경남 하동 화개장터와 전북 부안 개암사, 전남 보성, 충남 천안 등지의 벚꽃축제를 비롯해 경기도 군포 철쭉축제, 충남 금산 비단고을 산꽃축제, 전남 화순 백야산 철쭉제 등도 아쉽지만 올해 볼 수 없다. 봄꽃축제 실종에 따른 경제효과 손실액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무심기 행사도 직격탄을 맞았다. 서울시와 25개 자치구는 해마다 추진하던 식목월 나무심기 행사를 올해는 열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암울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보인다. 방호복으로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지만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 마스크 나눔과 재능 기부에 동참하는 시민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현장을 지키고 있는 공무원 등의 활약상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특히 방호복에 속옷은 땀범벅이고, 얼굴엔 보호 장비와 반창고를 붙인 의료진의 사진은 짠한 느낌을 준다. 세계가 주목하는 대한민국의 방역은 이런 숨은 영웅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천문학적인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소식에 나눔과 기부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모금된 기부금만도 1500억원이 넘었다고 한다. 위기 극복을 위한 온 국민의 따뜻한 격려와 지원이 쏟아지고 있다. 팍팍하고 고단한 삶이지만 그래도 살 만한 세상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려울 때일수록 힘을 모아 온갖 역경을 극복해온 우리 민족의 DNA를 다시 한번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현실의 모습을 미리 예언한 것처럼 ‘아무것도 만지지 마라, 누구도 만나지 마라’라는 한 외국의 재난 영화 카피 문구처럼 신종 바이러스가 우리 사회에 가져다준 섬뜩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스스로 출입을 자제하고 몇 주째 집안에서 묵묵히 생활하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것뿐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잔뜩 움츠린 시민들은 아직 집 밖으로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외출할 때 이제 마스크를 챙기는 건 일상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희망의 싹도 서서히 퍼지고 있다.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바이러스의 엄습에도 그래서 우리는 밝은 미래를 기약하는지 모르겠다. 긴 겨울 견뎌낸 봄꽃이 전국을 물들이듯이.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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