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요나 (15) 배고픈 아이 머리에 손 얹고 기도하다 유치장 신세

호텔 로비에 구걸하는 아이들 마음 아파 1달러 쥐어주며 눈물로 기도…허가서 없이 접촉했다는 죄로 잡혀가

장요나 선교사가 1993년 베트남 하노이 아가페탁아소에서 아이들을 격려하고 있다.

여행허가서가 나오자마자 바로 호텔 밖으로 나갔다. 호텔 입구에는 넝마를 걸친 아이들이 버글거렸다. 바짝 말라 오종종한 얼굴엔 땟물이 졸졸 흘렀고, 누런 콧물 위엔 파리가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보며 ‘1달러’를 외쳤다. 초점 없는 눈동자와 가냘픈 손을 보자 가슴이 너무 아팠다. 얼굴을 보니 며칠 동안 먹지도 못한 것 같았다. 일단 먹이고 싶은 생각에 호텔에 들어가 식당 안에 있는 바게트를 갖다 줬다. 하지만 아이들은 빵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1달러만 외쳤다. 아이들 손에 1달러를 쥐여주는데 앙상한 뼈가 만져졌다. 그 손을 보자 왈칵 눈물이 났다.

“하나님 이 아이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 아이들이 주님의 은혜 가운데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지켜 주십시오.”

눈물을 쏟으며 기도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팔을 잡아당기더니 팔짱을 끼었다. 눈을 떠보니 경찰이었다. 내가 접촉허가서 없이 아이의 머리에 손을 대고 기도한 게 잘못이었다. 당시 베트남에는 외국인이 현지인을 만날 때 반드시 접촉허가서를 받아야 하는 법이 있었다.

그 길로 붙잡혀 간 나는 정치범수용소 같은 곳에서 20일간 구류 조사를 받고 쫓겨났다. 접촉허가서 없이 현지인과 접촉했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20일 만에 출국당하니 억울하고 실망스러웠다. 동시에 공산주의 국가의 현실을 실감했다.

나는 방콕에 도착하자마자 베트남 비자를 다시 신청했다. 두 번째 비자는 발급받는 데 더 오랜 시일이 걸렸다. 하지만 사명을 주셨으니 반드시 비자가 나올 거란 확신을 하고 기도로 선교를 준비했다.

어렵게 비자를 받아 하노이에 가도 체류 기간이 한 달을 못 넘겼다. 겨우 한 달을 지내다 방콕으로 나와야 했다. 3개월을 기다려서 비자를 받고 또다시 하노이에 들어갔다 출국당하는 생활을 1년 동안 반복했다.

그러다 만난 사람이 A씨였다. 그는 한국말을 할 줄 아는 베트남 사람이었다. 군인이었을 때 북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북한말을 꽤 잘했다. 그에게 일당을 주고 베트남 말을 배웠다. 통역 삼아 그와 함께 다니며 현지 상황을 탐사하는 사역에 들어갔다.

그와 제일 먼저 간 곳이 탁아소였다. 그때만 해도 베트남은 협동농장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모가 일하는 동안 어린아이들은 탁아소에서 돌봐줬다. 그런데 나라가 가난하다 보니 탁아소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원장은 내게 재정이 부족해 아이들에게 점심을 주는 것도 힘들다며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탁아소를 도우면서 공산주의 국가 시스템을 배웠다. 그리고 그 시스템에 익숙해질 때쯤 탁아소 하나를 넘겨받아 아가페 탁아소로 이름을 바꾸고 다양한 계층의 아이들을 돌봤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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