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로 달려간 신학 ‘그리스도인의 공적 책임 가슴에…’

‘복음의 씨앗’ 아신신학연구소 회원들, 고통의 현장 속으로

아신신학연구소 한 회원이 지난 12일 대구 동촌제일교회에서 취약계층에게 나눌 생필품을 포장하기 전에 성경을 가슴에 품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아신신학연구소 제공

신학(神學)은 책상에서만 연구하는 게 아님을 믿는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스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생존 위기에 내몰린 대구·경북의 취약계층을 위해 직접 생필품을 꾸려 전달하고 있다.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하는 것이 신학이라고 배운 이들이 그리스도인의 공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에 소속된 영남신학대 아신신학연구소 회원들은 지난 12일 마스크를 쓴 채 대구 동촌제일교회(장성운 목사)에 모였다.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대구·경북의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다수인 이들은 마스크, 해열제, 소화제, 상처 치료제, 일회용 밴드 등 비상 약품과 즉석 카레, 스팸, 참치 통조림, 라면, 초코파이, 젤리, 초콜릿, 사과즙 등 먹거리를 우체국 택배 상자에 넣었다. 풀어서 바로 먹거나 물만 부어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음식물에 더해 대한기독교서회가 발간한 2020 고난주간 묵상집 ‘패션(Passion) 고난과 열정의 동행’ 책자가 보태졌다. 총 200박스가 제작됐다.

연구소 회원들은 이날 사회복지기관을 통해 대구 남구에 70박스, 동구에 60박스, 경북 경산에 70박스씩 물품을 전달했다. 연구소 회원인 김성수 대구 한밀알교회 목사는 “전국에서 성금이 답지한다고 하지만, 당장 사용이 쉽지 않다는 보도를 접했다”면서 “취약계층에게 필요한 물품을 직접 구매해 현장에 바로 전달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타이밍이 참 중요한데, 사회적 접촉이 전부 끊긴 소외계층은 지금이 가장 힘들고 먹을 것이 부족한 때”라고 설명했다.

아신신학연구소 회원들이 지난 12일 대구 동촌제일교회에서 소외계층에게 전달할 생필품을 정리하고 있다. 아신신학연구소 제공

연구소 회원들은 19일에도 동촌제일교회에 모여 대구 지역 쪽방촌 200가정을 위한 식료품과 생필품을 포장했다. 쪽방촌 가정들은 대부분 단칸방에 살면서 공동 화장실을 쓰고 일용직으로 일하는데, 당장 일자리가 끊기고 무료 급식소도 문을 닫아 끼니 해결이 어렵다는 소식을 쪽방촌 사역자들에게 들었다. 수건 비누 치약 칫솔 물티슈 등 생필품과 밥 국 짜장 라면 등 즉석조리 식품, 커피믹스 등을 담았다. 회원인 박진만 청송 진보제일교회 목사는 “식료품 생필품 구매비용으로 연구소 기금 1000만원을 출연했는데 추가로 헌금 700여만원과 물품 지원 등 정성이 계속 모이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소 이름 아신(芽信)은 ‘복음의 씨앗’을 뜻한다. 김동건 교수가 영남신대에 부임한 1993년 모임을 시작해 27년간 50차례 학술대회와 세미나 등을 진행해 왔다. 100여명 회원들이 모여 한국교회와 민족 구성원을 위한 신학을 구현하기 위해 연구한다. 코로나19 집중 피해 지역에 대부분의 회원 교회가 속해 있지만, 이웃을 향한 응원 현수막 걸기, 일주일에 하루는 마스크 구매 줄 안 서기, 소방서 경찰서 주민센터 등과 마스크 나누기 등을 실천하고 있다.

우체국 택배 상자에 포장된 생필품을 차량에 싣고 있는 봉사자들. 아신신학연구소 제공

이달 초 연구소는 코로나19 재난이 종식될 때까지 소외계층을 돕기 위한 센터를 일시적으로 운영하자고 뜻을 모았다. 연구소는 봉사와 참여를 제안하는 글에서 “지금은 국가적 재난과 국민적 고통의 때”라며 “지금까지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공적 책임을 일관된 신학적 입장으로 견지해온 아신신학회는 국민의 고통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갈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어 “교회는 모이는 교회로 예배할 것인가, 흩어지는 교회로 예배할 것인가 하는 논의를 넘어서야 한다”며 “지금은 우리가 서 있는 곳이 곧 교회 현장”이라고 강조했다. 먼저 가 계신 주님과 함께 이 땅의 갈릴리로 함께 걸어가자고 제안했다.

연구소 회원들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기도회도 홈페이지를 통해 열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최경식 대구 수성교회 목사가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을 위한 기도문’을 썼다.

“세상의 어지러움은 누구의 탓이 아니라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였고 세상에 있는 것을 탐하였습니다. 또한 이웃을 사랑하기보다 자기 자신만 지나치게 사랑하였습니다.… 이번 사태로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이 특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자비로운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살아갈 용기를 주시고 우리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선한 마음도 더불어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연구소 좌장인 김동건 영남신대 교수는 “아이들 콧물이라도 닦아주고, 이웃의 신발이라도 닦아줘야 신학”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신앙은 삶 속에서 구체화할 때 힘을 얻는다. 실천이 없으면 참으로 공허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소는 자신들의 움직임이 외부에 알려지는 데 큰 관심이 없었다. 취재에 응한 이유는 하나, 이렇게 어려울 때 한국교회가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보자는 취지였다.

김 교수는 “신앙이 실천을 통해 심화하고 확인돼야 봉사 참여자 본인도 희생이 아닌 감사로 느끼고 신앙의 활기를 되찾게 된다”면서 “코로나19를 통해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신뢰를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