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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우리 아주 잘 버티고 있다

한승주 논설위원


사람은 피곤하고 물자는 부족 한계 상황에서 지쳐가지만 우리 시민의식 자부심 가질만
방심하는 순간 경고등 켜져 사회적 거리 두기 이어가야
얼어붙은 땅 뚫고나온 새싹처럼 위기에도 희망은 움트고 있을 것


우려하던 문자메시지가 왔다. 일하는 건물의 다른 층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요약하면 이렇다. 유럽 방문 후 지난 14일 귀국. 일요일인 15일 회사 다녀감. 무증상이지만 17일 자진 검사, 18일 확진 판정, 현재 병원으로 이송됨. 동선 확인 결과 승강기 복도 사무실 화장실 접촉자 없음. 확진자가 이용한 승강기는 바로 폐쇄됐고, 사무실도 방역한다. 문자대로라면 나는 동요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엘리베이터는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이용하던 것이다. 괜찮을까. 갑자기 옆 사람의 기침소리가 크게 들리고, 목이 따끔거렸다.

한계 상황이다. 사람은 피곤하고 물자는 부족하다. 2주간의 사회적 거리 두기가 계속 연장되면서 우리는 지쳐가고 있다. 감염의 두려움을 떨쳐내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환자에게 달려간 의료진, 밤을 새워가며 엄청난 양의 코로나 진단 검사를 한 의료 종사자들, CCTV를 돌려 보고 신용카드 내역을 추적해 확진자의 동선을 파악해온 방역 관계자들. 안타까운 과로사가 생길 정도로 이들의 체력이 바닥나고 있다.

서울 이태원에서 유명 식당을 운영하던 한 방송인은 코로나 여파로 잠시 문을 닫았다. 그 가게의 월세는 약 935만원. 전국에 이보다 작은 가게가 수두룩하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개학이 미뤄지며 아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한 맞벌이 부부들은 진땀이 난다. 대학수학능력시험까지 연기될 수도 있는 고3 수험생들의 조바심도 커진다. 대형 병원의 방호복과 마스크도 재고가 얼마 남지 않았다. 약국에서 마스크 사기도 여전히 수월하지 않다.

우리는 겨우 버티고 있지만, 한국 의료진의 수준과 시민의식은 외국에서 연일 찬사를 받고 있다. 제롬 애덤스 미국 공중보건서비스단장은 16일 폭스 뉴스에 출연해 “우리는 (사망자가 급증하는) 이탈리아가 될 모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만약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고 손 씻기, 기침할 때 입 막기 등 기본적인 조치를 한다면 한국이 될 희망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희망’이라면 8할은 성숙한 시민들에게 빚졌다. 버스나 지하철에는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이 거의 없다. 이들은 버스를 타기 위해 멀리서 질주하면서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다.

대형마트 앞에서 카트를 끌고 긴 줄을 선 미국인의 모습에서는 전쟁을 앞둔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이들은 생수와 휴지 등을 마구잡이로 카트에 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나서 “물건은 충분하다. 일주일 치만 사라”고 당부했지만 믿지 않았다. 반면 우리의 대구는 어땠는가. 확진자가 수백명씩 나오고, 전 국민이 대구·경북 지역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시기에도 사재기는 없었다. 대구 시민들은 조용히 집에 머물며 침착하게 일상을 지켰다. 도시의 품격, 민주 시민의 모습은 이런 것이다. 오랜 시간 방호복과 고글을 써서 상처난 얼굴에 반창고를 붙인 간호사들의 헌신은 전 세계를 뭉클하게 했다. “한국의 시민의식이 코로나 극복의 강력한 무기”라는 외신 보도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런 우리들이 모여서 지금의 위기를 넘기고 있다.

우리 아주 잘 버텨왔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잘해온, 민주주의의 성숙함을 보여준 스스로에게 격려를 해주자. 지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 보자. 힘들지만 앞으로 2주일만 더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보자. 아이들이 안전하게 학교에 다시 갈 수 있을 때까지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최근 건강하던 17세 학생이 갑자기 숨졌다. 비 오는 데 1시간가량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선 그날 밤 열이 났고 폐렴 증세를 보였다. 코로나가 원인은 아닌 걸로 밝혀졌지만 우리는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마음을 놓는 순간 경고등은 켜진다. 한창 기승을 부릴 때보다 잠시 주춤하고 침묵하는 바이러스가 더 무섭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처음 겪는 것이라 혼란스럽지만 담담하게 각자의 위치에서 할 일을 하자.

공원에 푸른 싹이 났다. 이미 자라고 있었을 텐데 내 눈에는 처음 보였다. 한겨울 바깥공기는 차갑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어느새 계절은 바뀌고 봄이 와 있었다. 여린 새싹이 기어이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왔다. 어지러운 세상 어딘가에서도 희망은 움트고 있을 것이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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