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요나 (16) 베트남 온 지 2년 반 만에 선교의 문 활짝 열려

환우들 보면 생사 오가던 내 모습 보여… 병원 세워 무료로 치료해 주기로 결심

장요나 선교사(왼쪽)가 1990년 1월 11일 사랑의병원선교회 파송 예배를 드리고 있다.

나는 사랑의병원선교회를 통해 베트남에 선교사로 파송됐다. 선교회는 초교파로 모인 의료선교단체로 의료 혜택이 필요한 곳이나 직접 선교가 어려운 곳에 병원을 세우고 의료 사역을 통해 간접 선교를 한다. 그래서 선교사로 파송되는 부부 중 한 사람이 반드시 의사나 간호사 등 전문적 의료 행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혼자 몸으로 온 데다 어떤 의료자격증도 없는 나를 하나님은 왜 이 선교회를 통해 베트남에 오게 하셨을까.

기도 중 하나님이 깨달음을 주셨다. 하노이를 두 번째 방문해 목격한 수많은 환우의 모습이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음 직전까지 갔던 내 모습과 겹쳤다. 과부가 과부 심정을 안다고 베트남 환우를 볼 때마다 나는 애끊는 심정이 됐다.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이 그들 역시 살려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손을 얹어 기도해 보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감옥에서 나와 병자들을 찾아가 빵을 주고 그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병이 나은 이들이 많았다. 내게 신유의 은사를 주셨으니 이제 병원을 세워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기도해 주면 되겠다 싶었다.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확신으로 병원을 세우기로 했다. 그와 맞물려 공산당의 한 서기장이 남딩성에 아동병원을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이를 위해 사랑의병원선교회와 베트남선교회가 자매결연을 하고 함께 추진했다.

그러다 내가 세 번째로 감옥에 붙잡혀 가는 일이 생겼다. 안수기도를 하다가 접촉허가서 없이 현지인을 만났다는 이유로 연행됐다. 하노이에서 탁아소 운영 등을 하면서 신분이 많이 노출되다 보니 조금만 다른 행동을 해도 금세 눈에 띄어 제재를 당했다.

세 번째 감옥에서 나온 후 나는 호찌민으로 내려왔다. 호찌민으로 올 때 세계친선협회(PACCOM)로부터 메콩강 빈롱성에 병원을 세워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빠콤이라 불리는 협회는 베트남 외교부 산하 기관으로 외국인들을 관리 감독한다. 외국인의 의료 교육 구제 사업, 봉사 활동 등의 NGO 활동을 지원하고 동시에 사상을 변질시키는 행위를 하는지 감시한다.

빠콤에서 NGO 단체로 인정받으면 3년 비자가 주어지고 활동허가서를 받을 수 있다. NGO 비자가 있는 사람에게는 접촉허가서 없이 현지인과 만날 수 있는 활동허가서를 발급해준다.

나는 호찌민에 있는 한국식당에 짐가방 2개를 맡기고 메콩강 하류 빈롱성으로 내려왔다. 한 푼이 아쉬울 때라 숙소를 빌리는 돈도 아까웠다. 거처도 없이 빈롱성과 호찌민을 오가며 사역을 감당했다.

초라한 입성에 행색도 남루해 남들 보기에 영락없는 거지꼴이었지만 그때만큼 행복했던 적도 없었다. 베트남에 온 지 2년 반 만에 선교의 문이 열렸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1993년 빈롱성에 농푸 사랑의병원을 짓고 무료로 치료해주는 NGO 자격을 취득했다. 사랑의병원선교회 이름을 아가페라 짓고 빠콤에 정식 NGO로 법인 등록을 했다. 그 활동허가서로 나는 베트남에서 본격적인 복음 사역을 시작했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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