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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장한 남편 걸어서 병원 갔는데 죽어서…” [이슈&탐사]

[치명률 1.2%에 가려진 비극] ① 느닷없이 찾아온 죽음


치명률 1.2%. 22일 기준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대비 사망한 사람의 비율이다. 다른 나라의 방역 조치와 비교할 때 정부가 내보이는 숫자지만 이 안에 갇혀버린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19로 생명을 잃은 사망자들이다. 사망자와 유가족에게 1.2%는 의미 없는 숫자다. 그들은 코로나19로 삶의 100%, 전부를 잃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국내 사망자가 100명을 넘어 110명에 이르렀다. 국민일보는 이 중 6명의 유가족을 인터뷰해 발병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들었다. 가족들은 고인이 바이러스에 스러질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나같이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숨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문 보다가 쓰러진 아버지

지난 9일 오전 9시 대구의 한 가정집. 이모(40)씨의 아버지(62)가 신문을 보다가 기침을 하더니 갑자기 “숨을 못 쉬겠다”며 옆으로 쓰러졌다. 놀란 아들이 119에 신고를 했다. 아버지는 7분 만에 도착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씨는 아버지가 이틀 전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떠올라 119 구급대원에게 알렸다. 구급대원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음성’이라고 말해줬다.

병원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9시40분. 아버지는 기계호흡으로 1시간여를 간신히 버티다 오전 11시쯤 숨을 거뒀다. 이씨는 “다른 질환이 없었는데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그때까지만 해도 급성심근경색 같은 심장병을 의심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아버지가 2시간 만에 사망한 이유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의료진도 이해가 가지 않았는지 사후 폐 검사를 했다. 폐 사진을 본 의료진은 “코로나19가 아니면 이렇게 섬유화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코로나19 검사가 다시 실시됐다. 그날 저녁 양성 판정이 나왔다. 뉴스에서 아버지는 ‘대구 37번째 사망자’가 돼 있었다.

이모(53·여)씨 가족도 어머니 김모(80)씨를 한순간에 잃었다. 대퇴부 골절 수술을 두 차례 받은 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했지만 전동휠체어를 타면 어디든 자유롭게 다녔다.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이후 어머니는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아버지와 집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5남매의 안부 전화에는 줄곧 “괜찮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이씨가 전화를 했다. 어머니는 “배가 아파서 동네 병원에 다녀왔는데 장염인 것 같다”고 했다. 놀란 이씨가 근처에 사는 큰 언니에게 전화했고 언니는 죽을 들고 어머니의 집을 찾았다.

낮 12시쯤 죽을 받아먹던 어머니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구급차가 오기 전까지 언니가 구급대원의 전화 지시에 따라 심폐소생술을 했다. 어머니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호흡이 돌아오지 않았다. 오후 1시28분 사망판정이 내려졌다. 죽을 먹던 어머니가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주검이 됐다.

사후 진행된 코로나19 검사에서 확진 판정이 나왔다. 어머니에게 죽을 떠 드린 큰 언니와 남동생, 함께 집에 머물던 아버지가 격리됐다. 86세인 아버지는 나흘 뒤인 6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씨의 아버지는 심폐소생술을 받는 등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다가 지금은 안정적인 상태다.

‘어쩔 수 없는 죽음’이 아니었다

보건 당국은 사망자 추가 사실을 발표할 때마다 ‘고혈압’ ‘당뇨’ 등 기저질환을 함께 이야기한다. 사망자 가족은 고인들이 그럼에도 건강한 삶을 살고 있었다고 말했다.

“걸어가 병원 간 아저씨가 죽어서 나왔어예.” 남편 박모(65)씨를 잃은 임씨(60)가 흐느끼며 말했다. 남편은 폐가 좋지 않은 것을 빼고는 건강했다. 매일 헬스와 요가로 건강관리를 했다.

불운은 지난달 18일 대구 경북대학교병원 응급실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폐가 좋지 않다고 느껴 입원하고 폐 검사를 받던 중 코로나19 확진자가 같은 병원에 다녀갔다는 역학조사 결과가 나왔다. 박씨도 검사를 받았지만 결과는 ‘음성’이었다.

하지만 숨이 찬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열까지 나기 시작했다. 병원 측에서 코로나19 검사를 한 번 더 진행했다. 입원한 지 사흘 만인 지난달 21일 새벽 4시 갑자기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병실에 들이닥쳤다. 검사 결과 ‘양성’이 나왔다고 했다.

임씨는 처음 나흘 동안 수시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상태를 물었다. “억지로 밥 먹으라고 하고, 죽을 달라고 해서 먹으라고 했어요. 지난달 24일 아침 남편이 ‘괜찮다, 숨이 가쁘다’ 했는데 그게 마지막 통화였어요.” 그로부터 23일 뒤인 지난 18일 새벽 4시20분쯤 남편이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들 박씨(26)는 아버지를 해당 병원에 입원시킨 것을 뼈저리게 후회한다. “아버지가 평소에 진짜 건강했거든요. 입원하다 감염된 것 같은데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면 다른 병원에 갔을 겁니다.”

성모(60·여)씨의 어머니 김모(86)씨는 평소 매일 대구 달서구의 한 복지관에서 요가를 하고 몇 ㎞씩 걸어 다니며 친구들과 어울렸다고 한다. 어머니는 심장수술을 받은 적이 있고 고혈압과 당뇨를 앓긴 했지만 꾸준히 약을 챙겨 먹고 운동하며 건강을 유지했다. 지난달 24일 복지관 이용자 한 사람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어머니는 복지관에 나가지 못했다.

지난달 27일 기력이 떨어지고 열이 나자 어머니는 영남대병원 선별진료소를 찾아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결과를 통보받기 전인 지난 1일 갑자기 호흡 곤란 증상이 나타났다. 119 구급차가 대구 가톨릭대병원으로 어머니를 싣고 갔지만 사망 판정이 내려졌다. 성씨는 부실한 역학조사와 확진 통보 지연이 어머니의 생명을 앗아갔다고 생각한다. “나이 드신 분들 고혈압, 당뇨 없으신 분들이 있나요. 제때 확진 판정이 나왔으면 절대 이렇게 안 됐을 겁니다.”

지난 16일 아버지(66)를 잃은 서모(37·여)씨는 사망 발표와 함께 ‘식도암’이 기저질환으로 언급된 사실이 너무 속상하다. 아버지는 2017년 식도암 수술을 받긴 했지만 완치 판정 이후에는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았다. 다른 질환으로 당뇨가 있을 뿐이었다. 서씨는 “식도암이 재발해서 항암치료라도 받고 있었다면 몰랐을까, 몇 년은 더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식욕이 떨어져 혹시 암이 재발했나 하는 걱정에 병원을 찾았다. 병원 내에서 진행된 대구시 호흡기 증상자 전수조사에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난 18일 사망한 하모(77·여)씨의 며느리 유모(48)씨도 시어머니가 평소 정정했다고 말했다. “건강이 안 좋으시긴 했지만 꾸준히 운동도 하시고 말도 정정하게 하셔서 돌아가실 정도는 아니었어요. 실제 나이가 올해 팔순이시라 잔치 계획해야겠다 캤는데 이래 되셨으니 어쩔 수가 없지요.” 숨진 하씨는 처음에 열이 나지 않았고 장염 증상만 있어 가족들은 코로나19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장염 증상이 나아지지 않자 코로나19 검사를 받았고 지난 10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남편 휴대폰도 못 돌려받았어예”

남편을 한 줌 재로 보낸 임씨가 병원에 유품을 돌려 달라고 하자 “코로나바이러스가 있어 폐기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병원이 버린 휴대전화에는 남편의 사진, 오래전 연락이 끊긴 남편 형제들의 연락처가 담겨 있다.

임씨는 “자기 부모가 죽어도 그렇게 했겠습니꺼. 걸어서 가가꼬 죽어서 나온 것도 억울한데, 장례도 못 하고 바로 화장했는데, 너무 억울하잖아예”라며 울먹였다. 병원에 휴대전화를 찾아 달라고 해봤지만 “원하는 게 뭐냐. 어떻게 해주면 풀리겠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임씨는 남편 지인들의 연락처를 알지 못해 사망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 아들 박씨는 “엄마가 아빠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 그거라도 보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라고 말했다.

어머니를 잃은 성씨는 사망 나흘 뒤 어머니의 휴대전화에 전송된 문자 메시지를 보고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달서구 보건소가 보낸 문자 메시지에는 ‘검사결과 양성입니다. 자가격리 대상이므로 외출하지 마시고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고 적혀 있었다. 사망 5일 뒤에는 역학조사를 하겠다는 문자를 받았다.

성씨는 “어머니가 다니던 복지관에서 지난달 24일에 어떤 분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던데 동선 추적해서 역학조사했더라면 충분히 저희 어머니를 걸러낼 수 있었을 거예요. 정말 엉망인데 정부가 방역 잘한다고 생색내는 걸 보면 소름이 끼쳐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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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방극렬 기자, 김유나 권중혁 기자 extre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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