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한 충격과 공포로 혼돈과 단절로 빠져들고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전염병이 연초 우리나라와 일본에 들이닥쳤을 때만 해도 중국을 비롯한 극동아시아의 국지적 문제로 여겨졌던 것이 이제는 전 세계적 현상이 돼 버렸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코로나가 억제돼 사회가 안정을 찾는다고 해도 다른 나라로부터의 역유입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돼 버렸다는 뜻이고, 잃어버린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의 생각보다 더 늦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는 또 사회적 거리두기로 지쳐가는 시민들에게는 우울한 소식이 아닐 수 없고, 세계로 나가 경제 활동이나 문화 활동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당분간 희망을 접어야 하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전 세계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 될수록 우리 사회는 경제적·사회심리적으로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특히 전염병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전염병을 통제하는 데는 효과적이겠지만,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정신심리적 측면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게다가 사회적 거리두기는 공동체를 위한 희생이라는 시민정신을 바탕으로 하는데 희생을 감내할 수 있는 시민정신이 발휘될 수 있는 임계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러한 점들을 모두 고려한다면 사회적 거리두기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그 부정적 측면을 완화시키기 위한 ‘시민들의 작은 행동들’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얼마 전부터 위기 청소년 대안가정인 ‘청소년회복센터’의 운영자들 및 아이들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하기 시작했다. 개학이 연기되는 바람에 혈기 왕성한 아이들에게 하루 세 끼 식사를 차려주는 것도 만만찮은데 시청, 구청, 교육청, 법원, 보호관찰소 등에서 번갈아가며 전화해 방역과 아이들 외출, 외박에 대한 통제를 잘하고 있는지 확인해대니 센터 운영자들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온종일 집에 갇혀 있어야 되는 아이들의 어려움도 매우 크다. 이를 두고 볼 수만은 없어 센터를 한 곳씩 돌아가며 식사를 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잠시의 외출에도 즐거운지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운영자들은 막혔던 숨통이 트인다며 고마워한다. 자랑할 것도 없고 전염병 차단을 위해 다들 조심해야 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작은 호의가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조그만 힘이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역병(疫病)’이라고도 불리는 전염병과 함께한 역사다. 시대마다 찾아온 전염병은 지성을 자랑하며 진보를 꿈꾸던 인류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인류 최악의 전염병은 바로 14세기 중기 유럽에 창궐한 페스트다. 흑사병(黑死病·Plague)이라고도 불리는 이 전염병으로 당시 유럽인의 3분의 1가량이 희생됐다고 한다. 페스트가 창궐할 때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실로 다양하지만 조화하기 어려운 양극에 선 종교 지도자들도 있었다. 전염병에 감염된 사람들을 치료해주거나 사망자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등 선행을 베풀다 결국 페스트에 감염돼 산화(散花)한 사람들과 걷잡을 수 없는 공포와 분노에 휩싸여 ‘마녀사냥’을 벌인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현재로서는 어두운 터널의 길이가 얼마인지 가늠할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는 언젠가는 종식된다. 사태가 종식될 때까지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분노를 표출하며 마녀사냥에 동참하거나 무익한 논쟁으로 허송세월할 것인지, 아니면 공동선을 이루기 위해 작은 실천이라도 하며 세월을 보낼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와 관련된 평가와 책임 추궁은 사후에 해도 늦지 않다.

관심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라, 그러면 내가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음을 알게 될 것이다. 선물로 줄 마스크를 하나 마련해 사회적 거리두기로 고독을 겪고 있는 이웃과 함께 식사해보라, 그러면 천국의 식탁을 맛볼 것이다. “코로나 백신이 개발됐다!” 이 한마디는 잃고 나서 소중함을 알게 된 ‘일상’을 회복시켜줄 최고의 소식이다. 이 한마디에 걸렸던 빗장이 벗겨지고 닫혔던 지갑은 열리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작은 실천도 백신 개발 소식에 버금가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선한 사마리아인’이 돼 어려운 이웃들을 위로하며 이 난국을 극복하는 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자.

천종호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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