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사육돼지 농장에서 자취를 감춘 것은 지난해 10월 10일이다. 5개월이 넘도록 확진 건수 ‘0건’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덕분에 지난해 중국 등 아시아권에서 맹위를 떨쳤던 ASF도 한국에서만큼은 맥을 못 췄다는 말까지 나온다. 하지만 긍정적인 외부 시선과 달리 방역당국 내부의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ASF 바이러스의 특성을 고려하면 지금이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평가한다.

확진 건수와 상반되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이유는 야생멧돼지다. 사육돼지와 달리 야생멧돼지의 발병 사례는 좀처럼 끊이지 않는다. 23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날 기준 421건의 확진 사례가 보고됐다. 폐사체가 409건(97.1%)으로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생포된 사례도 12건(2.9%)이나 된다. 감염된 야생멧돼지들이 곳곳으로 이동하면서 ASF 바이러스를 전파한다는 우려를 지우기가 힘들다.

여기에 계절적 요인이 우려를 더한다.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이 오면서 감염된 야생멧돼지와 사육돼지 사이에 매개체가 될 수 있는 생물이 늘어났다. 모기나 폐사체에 모여드는 파리가 매개체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보다 앞서 ASF를 겪은 해외에서도 곤충의 위험성에 주목한다. 지난해 미국 농무부(USDA)가 발간한 보고서는 모기·침파리와 같은 흡혈곤충이 기계적으로 ASF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고 서술한다. 감염된 야생멧돼지의 분변과 접하는 쥐 등 포유류나 조류 역시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사육돼지 농장 입장에서는 위험 요소가 늘어나는 것이다.

ASF 전파의 4대 요인 중 하나인 사람의 활동이 봄부터 활발해지는 점도 문제다. 본격적인 영농철을 맞아 야외 활동이 늘어나면서 ASF 바이러스와의 접점이 생긴다. ASF 바이러스는 토양에서는 최대 112일, 물웅덩이에서는 176일까지 장기간 생존한다. 영농 활동 과정에서 오염된 토양이나 물웅덩이와 접촉한다면 본의 아니게 ASF 바이러스의 매개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농식품부가 지난 15일 발표한 환경조사 결과를 보면 ASF에 오염된 토양과 물웅덩이가 각각 12건, 10건 확인됐었다.

위험을 단순히 가능성으로만 치부하기도 힘들다. 실제 계절적 요인 때문에 ASF가 확산한 사례는 해외에서도 수차례 보고돼 왔다. ASF 피해가 컸던 유럽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유럽연합(EU)이 2014~2019년 유럽 4개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의 확진 건수를 분석한 결과 겨울철에는 9건만 확진되는 데 그쳤었다. 이 수치는 봄에 64건으로 늘더니 여름에는 396건으로 정점을 찍었다.

농식품부는 이런 악순환이 한국에서도 반복되지 않으려면 봄철 방역이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한다. 매개체가 늘어나는 만큼 개별 농장과 야생에 잔존하는 ASF 바이러스와의 접점을 완전 차단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이달 중 전국의 모든 사육돼지 농장에 울타리와 조류 차단막을 설치할 계획이다. 아울러 쥐와 같은 동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사육시설 내 구멍 등을 보수하는 작업도 병행한다. 농장 둘레에 야생동물 기피제를 뿌리고 소독에 효과적인 생석회를 도포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한다. 야외 활동을 한 이들이 축사에 들어가는 것도 제한하기로 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가능한 모든 방역 조치를 취해 ‘만에 하나’의 사태를 막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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