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지인 중에 청소년수련관 생활체육 강사가 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수련관이 폐쇄돼 쉬고 있다. 그는 문재인정부가 추진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대상에서 제외돼 계약직으로 일하며 시급을 받아오다 수입이 아예 끊겼다. 더 걱정인 것은 언제까지 쉬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최근 서울시청 근처 한 식당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평소 같으면 점심 때 예약하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은 곳인데 손님이 우리뿐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생계 위기에 직면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정부의 지원제도 사각지대에 있으면서 매출이 급감한 소상공인·자영업자, 갑자기 실직한 비정규직, 프리랜서, 파트타임 노동자 등이 문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재난기본소득 도입이다. 자치단체장들이 잇따라 제안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24일 비상경제회의에서 “다음 3차 회의에서는 생계지원 방안에 대해 재정 소요를 종합 고려해 신속한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준비해 달라”고 지시했다.

재난기본소득과 관련해 가장 논란이 되는 게 재원이다. 재난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이들은 재정 악화를 우려한다. 하지만 기우일 뿐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보자. 일본은 234%, 미국은 109%인데 한국은 41.2%에 불과하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참 안타까운 게 우리나라 재정 관료들은 아주 지나친, 건전 재정에 관한 강박관념이 있다. 우리나라는 정부 재정이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건전한 나라”라고 말했다. 오죽했으면 재정 적자를 경계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마저 한국에 재정을 풀어 돈을 좀 더 쓰라고 하겠는가.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 없는 건전 재정이 무슨 소용이냐”며 기획재정부의 안이한 인식을 질타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보다 더 심각하다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해법도 파격적인 것이어야 한다. 한가하게 채무 타령 할 때가 아니다.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문 대통령도 “국민의 삶이 무너지는 것을 막는 게 최우선”이라며 “통상적인 상황이 아닌 만큼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과 경기도, 경남, 전북 전주 등 지자체에서 먼저 나섰다. 서울시는 중위소득 100% 이하 117만 가구에 최대 50만원의 재난 긴급생활비를 지원한다. 한정된 재원을 고려해 중하위 계층을 타깃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것이다. 경기도는 전체 도민 1326만명에게 1인당 10만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한다. 모든 주민에게 보편적으로 주는 게 옳으냐, 선별해서 주는 게 옳으냐를 따지는 것은 현 단계에서 중요하지 않다. 각 지자체의 재정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결단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박 시장은 25일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위한 신용공급 규모를 5조900억원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하면서 “당장 목말라 쓰러질 지경인데 비 오기만을 어떻게 기다리겠나. 지금 필요한 건 한 바가지의 물”이라고 신속한 지원을 강조했다. 혹자는 지자체의 지원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당장 생계 위협을 받고 가게를 접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리얼리즘 관점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감염병은 이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신종 바이러스는 또 생길 것이고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는 들불처럼 퍼져나갈 것이다. 차제에 정부가 감염병 재난에 대응해 ‘한국형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게 좋겠다.

김재중 사회2부 선임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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