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요나 (20) 주님의 일꾼 돼 베트남 복음화 위해 일하는 제자들

소수부족 아이들에 베트남어 가르치고 한글과 컴퓨터 공부하며 전도자로 키워

장요나 선교사가 1995년 베트남 선교센터에서 소수부족 등 현지인 청년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다.

호찌민의 집은 서너 번 세를 옮겨가며 1993년부터 선교센터로 활용했다. 베트남인과 소수부족 청년 20여명을 데려다가 함께 지내며 학교에 보내고 센터에서는 공동체로 성경을 가르쳤다. 아침저녁으로 함께 예배를 드렸고 한글로 성경을 쓰게 하면서 한글도 가르쳤다. 그렇게 시작한 공동체의 청년들은 나중에 전도자가 됐다

각기 다른 성향과 모양의 사람들을 질서 있고 화평하게 이끌기 위해선 어느 정도 엄격한 규율이 필요했다. 그래서 리더를 세우고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공동체 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책임을 맡겼다.

어떤 이는 선교센터가 군대 같다고 했다. 어떤 면에선 비슷했다. 센터에 계급은 없었지만, 역할에 따른 위치는 명확했고 무조건 순종해야 할 것도 닮았다. 다 같이 식사할 때도 각자의 자리가 있었다. 내 옆자리에는 첫 번째 제자나 통역을 맡았던 다오 자매가 앉았다. 그다음부터 순서대로 쭉 앉았다.

다오의 일과표를 일일이 점검해 수업이 끝나면 바로 센터로 와서 센터 사역을 돕게 했다. 소수부족 아이들을 돌보고 문서 작업을 도울 수 있도록 한글과 컴퓨터도 공부하게 했다. 다오의 시간을 철저하게 관리한 건 다른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식물인간에서 깨어난 후 나는 모든 감각과 욕망을 잃어버렸다.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기에 음식을 사료라 불렀다. 살을 꼬집어도 아프지 않았다. 심지어 추위도 더위도 타지 않게 됐다. 그런데 딱 한 가지, 간만 생생해졌다. 다시 깨어난 후 신생아 간 기능이 생겨 아무리 일해도 피곤하지도, 지치지도 않았다. 불도저 같은 성격에 신생아 간 기능이 합쳐졌으니 나와 함께 일하는 센터 식구들이 많이 버거웠을 것이다.

혹독한 훈련을 잘 버티고 견딘 제자들은 베트남 사역을 하는 데 중요한 동역자가 됐다. 다오가 그렇다. 공부 욕심이 많았던 그는 호찌민대학에서 영어동시통역을 전공해 그쪽 분야로 나가길 원했다. 그런데 센터에서 훈련받으며 우선순위가 조금씩 바뀌었다. 무엇이든 이해해야만 순종했던 다오는 센터에서 내게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학업에 손해 보지 않으려고 밤새워 공부해 진도를 맞췄고 학점도 평균 이상으로 유지했다.

그런데 센터에서 점점 맡은 일이 많아져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시기가 됐다. 다오는 베트남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선 교회를 세우는 일이 중요하며 그 일을 위해 자신이 필요하다면 시간과 노력을 들여 헌신하겠다고 결심했다.

다오 선교사는 한국으로 와 총신대에서 신학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한국에 나올 때만 해도 학업 후 베트남에서 내 선교 사역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현재는 경기도 성남의 분당과 안성에서 두 개의 베트남교회를 담임하며 평택대 채플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처럼 베트남 선교센터에서 훈련받고 한국 신학교에 유학해 사역하는 제자들, 풍남 쭉벙 홍년 껌벙 등 14명이 베트남 복음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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