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산한 기운은 전염병이 창궐하던 지난달부터 이미 회사를 감돌았다. 일감이 없었다. 직원들은 수주가 끊겨 물건을 더 만들 이유가 없어졌다는 걸 체감하고 있었다.

“잠깐 올라오시죠.” 전 직원 대상 개별 면담이 진행됐다. 전화벨이 울리면 직원은 작업을 멈추고 죽는 상을 하고 사장실로 향했다. 곧 소문이 돌았다. “○○씨 이번에 나간대.” 무거운 침묵이 공장을 짓눌렀다. 지난 23일 찾아간 인천 남동공단 제조업체 상황이다.

전염병이 실물경제로 전이되는 속도는 가팔랐다. 내수 절벽 상황에서 해외 수주 업무까지 막히며 일감이 떨어진 제조업체에선 해고 칼바람이 불고 있다. 사장도 직원도 해결책이 안 보인다는 무력감에 휩싸여 있었다.

금융위기 버틴 강소기업도 결국 감원

이준혁(가명·50)씨는 날벼락을 맞은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지난 18일 사장 면담 때 “미안하지만 이번 달까지만 일해 달라”는 말을 들었다.

“첫 번째, 두 번째 파도는 어떻게든 헤쳐나갔는데 이번 건은 도저히 감당이 안 되네요.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발현된 바이러스가 3월 제 책상을 사라지게 만들 줄은 몰랐습니다.”

올해 쉰이 된 이씨는 한국 경제 부침을 온몸으로 겪었다. 서울의 한 사립대 무역학과를 나와 대기업에서 해외 영업 일을 했는데 IMF 외환위기가 닥쳤다. 회사는 구조조정을 시작했고, 그가 대상이 됐다. 업체를 옮겨 일했는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돌고 돌아 자리 잡은 게 지금 회사다. 이번엔 생각지도 못한 감염병 대유행이 기어코 다시 그의 삶을 짓눌렀다.

“집사람한테는 아직 얘기 못 했어요. 요새 사람 뽑는 곳이 없으니…. 이제 오십인 제가 재취업이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이씨가 있던 부서는 아예 정리됐다. 다른 부서까지 포함해 이달에만 정직원 10명이 권고사직 처리된다. 감원 인력이 12%가 넘는다. 그중 한 명인 입사 20년 차 김태현(가명·45)씨는 “인원 감축 분위기가 돌면서 저한테까지 칼날이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에 생존한다고 해도 어차피 1~2년 안에는 정리되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퇴사 결정 후 마지막 회식 자리에서 팀원 모두 펑펑 울었다고 했다. 김씨는 “저희만 그런 게 아니라 이쪽 업체들이 다 그렇다”며 “사장도 불쌍한 게, 어떻게 한순간에 사업이 이렇게 되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그들을 자를 수밖에 없었던 사장 최민재(가명·58)씨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한 명씩 붙잡고 미안하다고 얘기하면서 눈물로 사직을 권고했어요. 안 그러면 도저히 안 될 거 같아서…. 대학교까지 학자금 지원해서 애들 다 키운 분들인데 저도 속이 아주 쓰리죠.”

최씨는 1999년 1월 회사를 인수해 사업을 시작했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파고를 다 겪으면서도 여태 직원을 한 번도 줄여본 적 없다고 했다. 2~3년 전에는 고용노동부 청년친화강소기업, 인천시 일자리창출우수기업 인증까지 받았다.

“금융위기 때는 회사 매출액이 절반으로 떨어졌지만 직원들 다 끌어안고 갔습니다. 그때는 1년만 버티면 되겠다 싶었는데 이번에는 대책이 안 나오네요.”

제조업 상황은 수년째 내리막이었다. 침체 속도는 2~3년 전부터 눈에 띄게 가팔랐는데 그런 와중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직격탄을 날렸다고 했다. 매년 20% 가까이 감소하던 수주는 코로나19 사태 이후엔 씨가 마르다시피 했다. 최씨는 “줄어든 게 아니라 아예 없는 수준”이라고 표현했다. 사태가 단기간에 정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내놓은 답이 인원 감축이다.


확산하는 줄해고 공포

“매출을 기대하지 못하니까 어떻게 버티느냐의 싸움이 됐어요. 허리띠 졸라매기인데, 그게 결국 사람 정리하는 거라….”

벼랑 끝 사투를 벌이는 인천 남동공단 제조업체 여러 곳이 이미 해고를 시작했다. 휴대전화 부품 생산 업체를 운영하는 박기준(가명·55)씨는 아예 회사를 멈출 생각까지 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신규 주문 내역이 없어졌다. 아예 일이 없다고 했다. 한 달 대출 이자만 5000만원, 직원 급여까지 운영비는 2억원이 든다. 공장을 돌리지 않고 버티기만 하는 데 드는 최소 비용이다.

박씨 업체는 3차 벤더인데 그에게 일감을 주는 2차 벤더 업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거래처 사장들과 “우리도 일감이 없어 내려줄 게 없다”는 하소연을 나눈다고 한다. 박씨는 “버틸 수 있는 능력의 한계치에 온 것 같다. 직원들도 불안해한다. 한두 달 더 이러면 공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며 “코로나19 영향이 언제 끝날지 몰라 대책도 못 세우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 박씨는 종이컵을 구겨댔다.

포장기계 제조 업체도 구조조정을 고려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부터 대기업들의 신규 설비투자가 미뤄지면서 내수 거래가 급감했다. 전염병 공포에 베트남도 문을 닫아 수출, 수입도 끊겼다. 업체 관계자는 “수주가 지금보다 30% 이상 줄면 결국 직원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중소업체 수주 절벽

“앞으로 두세 달 더 이런 상태라면 공장을 돌릴 물량이 없어요. 살얼음판 걷는 기분이에요.”

대구에서 기계 분야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용호(가명·65)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가 90년대 창업한 작은 업체는 20여년 만에 직원이 약 300명인 내실 있는 중소기업으로 자랐다. 수출을 잘한다고 각종 부처와 협회에서 상도 많이 받았다. 전 세계 20여개국에 기계를 수출해 수백억원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였다.

하지만 수십 년을 버텨온 강소기업도 코로나발(發) 충격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수출기업’이라는 목표가 올가미가 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봉쇄령이 내려지자 김씨 업체는 옴짝달싹할 수 없어졌다. 매출 비중의 80%가 수출인데, 수주를 받으러 해외로 나가는 길이 모두 막혔다. 기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을 수입해오던 나라들도 모두 문을 닫았다. 미리 받아뒀던 주문은 5~6월이면 끝이다. 직원들 잔업도 사라져 월급이 20~30% 깎였다.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어려울 것 같아요. IMF 위기 때는 해외 공장이 멈추진 않았거든요. 미국이나 중국도 다 괜찮았고. 금융위기 때도 일감이 줄어 물량이 1년 정도 많이 감소했던 기억은 나는데 제조업 ‘셧다운’까진 아니었어요.”

김씨 업체만의 상황이 아니다. 국민일보가 접촉한 주요 지역 산업단지 업체들은 비슷한 우려를 쏟아냈다. “원청이 멈춰버리니까 오더도 없고, 출고도 없는 상황”(대구 성서산업단지관리공단 관계자)이라는 것이다. 울산의 조선해양기자재업계 관계자는 “큰 기업이면 워크아웃 같은 제도적 지원이라도 받지만 중소기업은 그 정도 상황을 맞으면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시장과 원청 영향을 많이 받는 자동차산업도 말단 기업부터 타격을 입고 있다. 광주의 한 자동차부품 공장의 경우 1월부터 수주 활동을 멈췄다. 이 공장을 운영하는 신모씨는 “우리는 수주를 받으면 그걸로 몇 개월, 몇 년을 돌리는 구조다. 지금 당장은 예전에 받아둔 수주를 돌리긴 하니까 어떻게 버티는데 앞으로 공장에 투입될 물량이 없어지면 문제가 커진다”고 했다. 유럽에서 거세지는 코로나19 확산세도 우려를 키운다. 울산의 한 산업단지관리공단 관계자는 “유럽에 자동차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들의 경우 걱정이 더 크다. (국가 간 교류가 멈추는 상황에서) 수출까지 막히면 큰일이 난다”고 전했다.

인천=김판 기자, 전웅빈 임주언 박세원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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