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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


500여년 전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울리히 츠빙글리가 취리히 그로스뮌스터에서 종교개혁을 시작했을 당시 그곳에는 흑사병이 창궐하고 있었다. 그는 흑사병에 걸린 사람들을 돌보다 병에 걸렸고 별다른 치료제 없이 격리된 상태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때 그를 정성스레 돌보아준 여성 안나 라인하르트를 만나 결혼했다. 츠빙글리는 이후 인문주의적 성향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향한 신학적 각오를 새롭게 다지며 종교개혁을 진행했다. 죽음의 병에서 회복된 경험을 츠빙글리는 ‘흑사병의 노래’(1520)라는 시로 남겼다.

츠빙글리의 개혁정신을 이어받아 조선 최초의 여성 의료선교사로서 명성황후의 주치의 역할을 했던 인물이 릴리어스 호튼 언더우드다. 호래스 그랜트 언더우드와 결혼한 그녀는 신혼여행 때부터 전도와 치유사역을 병행했다.

릴리어스 호튼은 전염병에 걸린 환자들이 서대문이나 동대문 밖에 방치된 상황을 목격했다. 1893년 서대문 근처에 일찍 별세한 언더우드의 형을 기념하는 프레드릭 언더우드 진료소를 마련해 모든 환자에게 무료로 개방했다. 이곳은 1895년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 전염병 확산 방지와 치료에 놀라운 효과를 보여줬다. 조선 정부도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전국에 검역소와 보건 단속 기구를 설치하도록 했지만,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다. 릴리어스 호튼은 전염병이 무서운 속도로 번지던 당시 상황을 자신이 경험한 것 중 가장 절망적이고 무시무시한 사건이라 묘사했다.

릴리어스 호튼의 치유사역은 궁극적으로 복음전도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그녀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소중한 선물을 주신 ‘위대한 의사’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녀는 공적 예배를 통해 설교하고 전도하는 일을 통해서만 그리스도를 섬긴다고 보지 않았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함께 신앙적 경건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코리아 미션필드’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는 제목으로 쓴 글에서 릴리어스 호튼은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과 생애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회당에서 오래 기도하고 설교하는 것만큼이나 병들고 괴로워하는 사람들과 사랑스럽고 진심으로 공감하는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 그를 예배하고 알리며 설교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공적 예배에서만 신앙적 경건을 찾고자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섬기는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고통 가운데 있는 이웃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더불어 살아감으로써 세상일에 관심을 가질 수 있고 더욱 구체적 예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녀는 이러한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정신과 연민을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 환자들을 대했다. 공적 예배가 일시적으로 중단돼 불안해하는 우리가 새겨볼 대목이다.

유럽에 흑사병이 만연했던 16세기나 콜레라가 이 땅에 창궐했던 19세기 말과 달리 코로나19 사태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동시에 발생했다. 전 세계가 하나로 엮여있음을 방증한다. 인간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자만하는 21세기에도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치료제가 없어 격리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이 같은 현실은 사순절 기간에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탐욕과 죄책을 고백하고 하나님에게 도우심을 간구하도록 겸허하게 만든다.

복음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해방시키며 두려움의 족쇄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힘이다. 그런데 복음을 전할 공교회의 예배가 제한받게 돼 또 다른 형태의 두려움을 낳고 있다. 일시적으로 공교회 예배가 중단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망가지는 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의 헌신과 기도 가운데 세워진 한국교회가 그렇게 허약하지 않음을 보여줄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 그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무대’임을 기억하면서 이 어려움을 기도 가운데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

정미현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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