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석 달간 금융회사에 필요한 자금을 무제한 공급하기로 했다. 금융시장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무제한 돈풀기’에 나선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도 내놓지 않았던, 사실상 ‘한국판 양적완화’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 상황이 엄중하다는 방증이면서 그간 한은의 대응이 소극적이라는 지적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일단 단기자금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한은은 26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를 열고 ‘공개시장운영 규정과 금융기관 대출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 한은은 우선 환매조건부채권(RP)을 무제한 매입하기로 했다. 기간은 4월부터 6월까지이며, 매주 1회 정례적으로 시장 수요에 맞춰 전액 사들이는 방식이다.

RP는 금융회사가 일정 기간 후에 다시 사는 조건으로 채권을 팔고, 경과 기간에 따라 소정의 이자를 붙여 되사는 채권이다. 시중 유동성이 일시적으로 부족해질 때 한은이 RP를 매입하면 시장에 유동성(통화) 공급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윤면식 한은 부총재는 브리핑에서 “선진국의 중앙은행 양적완화와는 다르다. 하지만 시장 수요에 맞춰 전액을 공급한다는 점에서 꼭 양적완화가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한국 상황에 맞춰 운용되는 양적완화라는 것이다.

한은은 또 돈을 빌릴 수 있는 공개시장운영 대상 기관도 늘린다. 한은은 대상 기관에 증권회사 11곳을 추가했다. 이에 따라 기존에 한은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웠던 증권사들도 돈을 빌릴 수 있게 됐다. 대출 시 담보로 삼을 수 있는 대상 증권도 한국전력공사와 한국도로공사 등 8개 공공기관 특수채로 확대했다.

한은의 조치는 단기 자금시장에 ‘단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회사채 등 채권시장은 코로나19 여파로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면서 기업 유동성에 경고등이 켜졌다. 증권사들의 경우 주가연계증권(ELS) 관련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 대응에 당장 급전이 필요한 상황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신용 리스크 확산을 막기 위한 방어막을 강하게 치고 있다는 것은 국내외 금융시장 안정에 긍정적 신호로 평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춘욱 EAR리서치 대표는 “유동성 공급의 다변화를 적극적으로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하지만 어디까지나 보조 정책이어야 하며, 정부의 재정정책이 효과적으로 맞물려야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양적완화’라는 표현이 다소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홍 대표는 “기준금리 인하 여력이 없는 한은 입장에서 한시적으로나마 ‘무제한 RP 매입’이라는 유동성 공급 방안을 양적완화 효과로 봐달라는 의미 같다”고 해석했다. RP 매입금리(0.85%)가 너무 높다는 반응도 나온다.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 취지를 감안할 때 기대에 훨씬 못 미친다는 것이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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