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휘발유 가격이 1년 만에 1300원대에 들어섰다. 이달 초 시작된 국제유가 폭락이 국내 석유제품 가격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국내 정유사 1분기 영업적자는 역대 최악인 2조원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31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국내 보통휘발유 가격은 9주째 하락해 ℓ당 1394.07원을 기록했다. 월 초 ℓ당 1523.52원이던 것에 비하면 한 달 사이 120원 이상 하락한 셈이다. ℓ당 1300원대는 지난해 4월 3일 이후 처음이다. 원유 가격 변동은 2~3주 이후 국내 석유제품 가격에 본격 반영된다. 3월 둘째 주에 시작된 유가 폭락이 이제 반영되기 시작한 만큼 휘발유 가격의 추가 하락 가능성이 크다.

정유사들의 1분기 영업적자는 2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손지우 SK증권 애널리스트는 1분기 에쓰오일의 영업적자를 5218억원, SK이노베이션의 영업적자를 1조434억원으로 전망했다. 원유 가격 급락으로 재고평가손실이 가중되고 정제마진이 악화된 영향이다. 이달 초 배럴당 50달러 선에 머물던 두바이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모두 한 달 새 20달러 선으로 폭락했다. 정제마진도 이달 셋째 주와 넷째 주 연속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유 4사를 합치면 1분기 영업적자가 최소 2조원은 될 것”이라며 “역대 최악의 1분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갑작스러운 유가 하락은 대표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증산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축·이동 수요 감소 등이 겹친 영향으로 분석된다. 원유 수요의 60%는 휘발유, 항공유 등 이동 관련 수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국가 간 이동이 감소해 항공유 수요가 줄고 차량 이동도 함께 줄어 휘발유 수요도 줄었다. 전 세계 공장들의 셧다운 또한 악영향을 줬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매년 원유 수요는 1%씩 늘고 있었는데 올해는 줄었다”며 “코로나19로 생활상이 변화하면 수요 회복은 더딜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정유업은 업황 변화에 공급을 신속하게 조절하기 어렵다. 규모의 경제를 특징으로 하는 대규모 설비의 가동을 갑작스레 중단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동률 조정으로 시장 물량을 조정해 정제마진 개선을 기대하는 게 최선이다. SK이노베이션은 SK에너지 울산 원유 정제공장 가동률을 10~15% 낮췄다. 현대오일뱅크도 지난해 12월부터 90%의 가동률을 유지하며 보유재고를 최소화 중이다.

저유가는 가계의 소비를 촉진하고 기업의 생산비용을 줄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요소로 여겨졌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수요 위축 장기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맞이한 저유가는 이전과 다르다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정유업 하락 사이클에 진입한 시기에 코로나19까지 닥쳐 회복 속도가 둔화될 것이 우려된다”고 했다.

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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