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적 위기를 겪고 있다. 우리의 일상뿐만 아니라 세계질서까지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는 팬데믹 코로나19가 그 원인이다. 코로나가 초래할 경제적·사회적 위기는 이제까지의 모든 위기들을 능가하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최대 위기라는 말도 나온다. 세계적 전염병의 진원지 중국이 사실상 코로나 종식을 선언한 것이 과장 문화의 허세가 아니길 바라는 것만큼, 이러한 위기 전망도 지나친 과장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그 정도와 범위를 볼 때 코로나는 사회를 구성하는 가치와 원칙에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올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코로나는 우리 민주주의의 미래도 결정한다. 코로나 이후의 우리 사회가 더 민주적인 사회로 발전할 것인지 아니면 권위주의적 사회로 퇴보할 것인지는 코로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현 시점에서 두 가지 모델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하나는 전체주의적 감시와 통제를 통한 ‘중국 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의 자율적 통제를 민주적으로 이끌어내는 ‘한국 모델’이다. 코로나 유입의 초기 차단 실패에도 불구하고 지역봉쇄 및 이동제한의 권위주의적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서 대량감염 속도를 늦춘 한국의 대처능력이 세계의 롤 모델이 되고 있다는 것은 실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중국의 전체주의적 모델은 그것이 아무리 효율적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처방식이 아니다. 시민들을 아무런 경고 없이 하루아침에 자택에 감금하고, 규칙을 준수하는지 첨단 기술을 통해 추적 감시하고, 한 도시를 봉쇄하는 전체주의적 방역은 개인의 삶과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다. 이런 사회는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코로나 이후에 더욱 전체주의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반해 민주적 방역은 시민들의 자율적 통제로부터 출발한다. 한국이 코로나 방역의 모범국가로 떠오른 것은 방역당국의 ‘투명성’, 의료진의 전문가적 ‘헌신’, 그리고 성숙한 ‘시민의식’의 조화로운 결합 덕택이다.

세 가지 중에 으뜸은 두말할 나위 없이 ‘민주적 시민역량’이다. 코로나가 전염된 사회에서는 어디에서든 함께 나타나는 불안의 바이러스 사재기 현상이 우리 사회에는 없다는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이제까지 익숙했던 안락함의 일부를 포기할 줄 아는 시민의 덕성이 자율적 통제를 가능케 한 것이다. 두 번째가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열성적으로 임한 의료진의 헌신이다. 이 두 요소들이 보건당국의 투명성과 결합해 한국적 모델을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가장 문젯거리인 엉뚱한 집단이 생색을 내려 한다. 정부와 집권 여당은 한국의 성공사례를 자신들의 공적으로 치장하려 열을 올리고, 야당은 이 정부의 실정에다 방역 실패의 딱지까지 붙여 정권을 심판하려 든다. 코로나는 실제로 이 정부의 실정과 온갖 정치적 이슈를 단숨에 덮어버릴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우리의 민주 역량을 시험할 21대 총선이 1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누가 어떤 공약과 역량을 가지고 출마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코로나 상황에서 치러지는 깜깜이 총선은 어쩔 수 없이 정권심판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혼란스럽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선택의 기준은 오히려 간단할 수 있다. 코로나 이후에도 여전히 좀 더 민주적인 성숙한 사회를 원한다면 ‘민주적 건강’을 강화하는 선택을 하면 된다. 전체주의가 독선과 독재로 유지된다면, 민주주의는 다양성의 토양에서 견제와 균형으로 성장한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개악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선거제도를 퇴보시키고 엉망진창으로 만든 역설적 상황에서도 우리는 투표해야 한다. 독선이라는 잡초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견제와 균형의 건강한 토양을 회복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약속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아직 보이지도 않지만 그의 말 하나는 여전히 타당하다. “정치는 혼란스러웠지만 국민은 위대했습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 지지세력만 챙기는 정권의 독선과 오만은 정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국민이 나설 때이다. 위대한 우리 국민의 민주 역량이 코로나뿐만 아니라 오염된 정치마저 건강하게 회복시켜주길 기대해 본다.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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