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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의 알뜻 말뜻] 당신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가?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잘못된 문장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숫자가 ‘불과’한 대우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숫자는 사람들이 그토록 중시하는 순위를 재고 역사를 기록하는 핵심문자였다. 가장 정확한 것,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의 증거이자 최상의 기호로 존중받았다. 수학과 과학, 의학, 농업, 음악에 이르기까지 숫자가 괄시받는 분야가 있었는가? 시계, 달력, 계산기, 자, 전화기, 지도, 저울, 카메라, 바코드…. 그 존재 이유나 기능이 숫자에 집중된 도구가 끝없이 등장하는 것은 인류의 삶에 그만큼 숫자가 중요해서이다.

태초에 신이 천지를 창조할 때도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을 일일이 세지 않았던가? 낮과 밤을 나누고, 물짐승과 날짐승, 뭍짐승을 구분하고, 마침내 남과 여를 만드는 과정을 하루하루 기록해 두었으나 숫자에 대해서 굳이 언급하지 않은 것은 숫자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신의 나이가 몇 살인지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은 것은 나이가 숫자에 불과해서가 아니라, 차마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이었을 거다. 세상 만물이 생겨나기 전에 신과 함께 존재했거나 신보다 먼저 생긴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숫자일 거다. 그렇지 않다면 ‘유일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떻게 성립할 수 있었겠는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 일부러 고안해낸 문장,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숫자’와 ‘불과하다’ 사이의 호응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명백한 오문이자 비문이다. ‘당신은 어머니에 불과하다’거나 ‘내게 있는 돈은 100억원에 불과하다’는 말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장이 매력적인 건 인류사에서 언제나 중요하게 취급받아온 숫자와 ‘불과하다’는 서술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결합해 버림으로써 잘못된 문장이 되는 오류를 일부러 범했기 때문이다. 상업적 카피로 태어난 이 문장이 진리의 아포리즘으로 느껴지는 건 여전히 우리 삶이 나이라는 숫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고.

스무 살이 되면 국내 몇 번째 순위의 대학에 들어가느냐가 중요하고, 마흔 살쯤 되면 연봉이 얼마인지로 사람을 판단하려 들며, 육십이 되면 노후자금 얼마를 모아두었는지를 따져야 하는 삶. 나이와 숫자가 짝패를 맞춰 평생 우리 삶을 따라다니며 속박하고 공격하는데, 그래도 숫자에 불과하다고?

2500년 전 소크라테스의 격언처럼 종종 소환되는 이 문장을 나는 다시 고쳐 쓴다. 숫자는 불과한 것이 아니고, 나이는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이라는 숫자는 보통의 우리가 어릴 때부터 가장 싫어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수학을 이루는 바로 그 숫자, 그러나 알고 나면 한없이 깊고 신비한 세계를 가진 그런 숫자인 거다. 나이를 먹으며 숫자 값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고작 그 정도에 불과한 인간으로 전락하는 자들이 더러는 있다. 그들에게 묻는다. 당신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가? 당신의 나이는 차라리, 아무 데나 던져진 돌멩이에 불과하다.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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