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는 암흑시대’ ‘교회는 과학의 훼방꾼’이라고?

기독교 승리의 발자취/로드니 스타크 지음/허성식 옮김/새물결플러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학설은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발표하기 전에 주교이자 과학자인 스콜라학자들이 정립했다. 사진은 코페르니쿠스의 고향 폴란드 토룬에 있는 그의 동상. 픽사베이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미국 코넬대 설립자인 앤드류 딕슨 화이트는 “신학적 장애물이 지리학의 진실에 굴복한 일”이라며 콜럼버스를 종교와의 싸움에서 이긴 영웅으로 추켜세운다.

하지만 지구가 둥글다는 건 콜럼버스가 활약한 15세기 전부터 성직자를 포함한 유럽 식자층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13세기 초 중세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던 천문학 교과서에선 지구를 구(球)로 표현했다. ‘평평한 지구’를 주창한 중세 성직자 세력과 콜럼버스가 평행선을 달렸다는 이야기는 미국 소설가 워싱턴 어빙이 지어낸 것이다. 이게 정설로 굳어져 여러 문헌에 다수 인용됐다. 기독교와 관련해 이처럼 잘못된 통념을 통렬히 논박한 책이 나왔다. 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 베일러대 교수의 ‘기독교 승리의 발자취’(새물결플러스)다.


스타크 교수가 전작 ‘기독교의 발흥’에서 초대교회 성장 요인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했다면, 이 책에서는 기독교가 어떻게 세계 최대의 종교가 됐는지를 주목한다. 그는 기독교 역사를 ‘로마 제국의 기독교화’ ‘중세의 흐름’ ‘신세계와 기독교의 성장’ 등 여섯 부분으로 나눠 당대 주요 일화와 사건을 사회학적 측면에서 분석했다.

책에는 그간의 통념을 깨는 내용이 적잖다. 초대 기독교는 하층민 같은 어중이떠중이에 기반을 둔 종교가 아니었다. 귀족, 사업가 같은 특권층에서 상당수 교인을 충원했다. 제자 가운데 고깃배에 품꾼을 고용한 야고보와 요한(막 1:20), 세리 마태 등은 부유한 환경에서 살던 이들이다. 스타크 교수는 예수도 상류층 출신의 학식 있는 랍비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당시 유월절에 매년 예루살렘에 갈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집안은 흔치 않았다.(눅 2:41) 유대인 사회에선 랍비가 생계를 위해 전문 직업을 갖는 유서 깊은 전통이 있었다. 당대 최고의 랍비 가말리엘에게 사사한 사도 바울도 천막 제조법을 익혔다. 예수가 일자무식한 목수였다면, 두루마리 성경을 읽는 일이나 토지 소유와 대부, 유산상속 등 재산 관련 비유를 활용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볼테르 등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암흑시대’라 혹평한 중세는 서구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시기였다. 굴뚝 안경 교량 대포 등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친 기술이 이때 개발됐다. 거대 수도원의 영지에서 상업활동이 펼쳐지며 자본주의가 태동했다. 고대로부터 이어진 노예제도도 이때 폐지됐다. 다성(多聲)음악, 고딕 건축, 대학과 의회 등 고급문화도 꽃폈다.

계몽주의자가 그토록 찬양하는 과학기술도 교회가 우세했던 중세에 발달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스콜라학자의 연구를 익힌 뒤 정립한 것이다. 16세기 과학의 발전이 불현듯 이뤄진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과학의 발흥 과정에 기독교가 한 역할도 주목한다. 이성적 창조주의 존재를 믿는 환경에서만 자연법칙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유의미해진다는 말이다. 당시 과학자 대부분은 주교였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주장처럼 근대 지성이 초자연주의에서 해방되는 ‘세속화’가 이뤄지면 종교는 소멸할까. 스타크 교수는 이를 “무신론 학자가 품는 희망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2007년부터 매년 중국을 제외한 160개국에서 실시한 갤럽 세계여론조사에 따르면 ‘종교가 당신의 일상에서 중요한 부분인가’란 질문에 76%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 조사에서 종교를 기독교라고 응답한 사람은 전 세계 인구의 41%다. 중국인을 모두 무신론자라 가정해도 기독교 인구는 전체의 33%다. 그다음을 차지하는 모슬렘(21%)보다 앞선다. 기독교가 세계 최대 종교로 성장한 배경으론 보편적 메시지, 활발한 성경 번역 및 반포, 감리교 장로교 등 여러 종파의 적극적 선교, 근대성을 든다.

중세 유럽인은 전혀 독실하지 않았고, 종교 경쟁이 치열할수록 종교 수준이 고양된다는 주장 및 근거들이 이어지지만, 기독교 찬양 일색인 책은 아니다. 마르틴 루터 등 종교개혁자뿐 아니라 가톨릭교회의 역사적 패착도 가감 없이 소개한다. 2000년 기독교사의 명암을 깊이 새긴다면 한국교회도 다시 승리의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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