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여성학과 사회학을 연구해 온 학자 출신이다.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로 한국여성학회 이사, 국방부 양성평등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지냈다. 이 장관은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할 ‘제2차 디지털 성범죄 종합대책’을 범부처 협의를 통해 조속히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최현규 기자

“텔레그램 성폭력과 관련한 국민일보의 심층보도가 없었으면 처참한 현실이 그대로 파묻혔겠지요. 기사를 읽고는 바로 기자가 누구냐, 했습니다. n번방의 여러 장벽을 허들 넘듯이 뚫고 잠입한 대단한 용기의 기자정신이고, 피해자들에 대한 깊은 공감과 연민 없이는 해낼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장관이기 이전에 기성세대로서 다음 세대가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했고, 보도해준 게 고마웠습니다.”

얼마 전 취임 6개월을 맞은 이정옥(64) 여성가족부 장관과의 인터뷰는 여느 때와는 조금 다르게 이뤄졌다. 지난달 국민일보 특별취재팀이 텔레그램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착취 사건을 보도한 ‘n번방 추적기’에 대해 이 장관이 감사를 표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면서 인터뷰 자리가 마련됐다. 31일 정부서울청사 여가부 접견실에서 만난 이 장관은 “숨바꼭질처럼 교활하게 진화하는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들의 뒤를 쫓는 대응이 아니라,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처벌과 교육을 통한 예방대책, 피해자 지원에 초점을 맞춘 포괄적인 대책을 만들겠다”며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여가부를 비롯해 범부처 합동으로 ‘제2차 디지털 성범죄 종합대책’을 준비 중이다. 2017년의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대책과 어떻게 다른가.

“예방교육이 대폭 강화될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클릭 한 번 하면 전 세계로 쏴지는데, 저지르는 건 너무 쉽고 지우는 건 너무 어렵다. 철저히 예방해야 하고, 그러려면 법이 강력해야 하고, 디지털 성범죄가 중대한 범죄라는 것에 대한 교육이 초기부터 강하게 이뤄져야 한다. 아동·청소년성보호법에 ‘성착취’ 개념을 도입하고 온라인 그루밍에 대한 처벌 근거를 마련할 예정이다. 2017년에는 몰카가 문제 되던 시기였다. 여가부는 피해자를 지원하고, 경찰청은 가해자를 수사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피해영상물 유포를 차단하는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이번에 ‘박사’ 조주빈씨를 잡은 것도 당시 대책으로 경찰청 사이버성폭력수사팀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빠른 대응이 가능했다.”

-n번방 사건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여가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여가부가 분업화된 대책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여러 부처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피해자의 눈으로 수사나 입법의 빈 곳이 없나 보이는 대로 건의한다. 피해자 주민등록번호를 바꾸는 것도 여가부가 오랫동안 행안부와 대화해 이뤄진 것이다. 손 내밀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게 피해자들의 고통과 두려움의 원천이다. 피해자들을 위해 긴급전화 1366을 운영하고 있다. 일단 24시간 상담이 가능하게 시간을 늘렸다. 피해자들이 노크할 곳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에도 주력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 전담 조직이 운영되고 있나.

“2018년 4월 출범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는 전 세계에 드문 피해자 지원 모델이다. 피해자 의료 상담과 법률 지원, 수사 지원은 물론 피해영상을 삭제하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센터 출범 후 지원 실적이 13만건이 넘는데, 이 중 삭제 지원이 12만건으로 압도적이다. 또 서울대학병원과 국립의료원 등 지역별 주요 병원에 해바라기센터를 두고 있다. 해바라기센터에는 의사와 경찰, 변호사 등 전문 인력이 파견돼 있어 원스톱 지원이 가능하다. 장관이 되기 전에 유엔개발계획에서 해바라기센터 사례를 소개했는데 콩고, 베트남, 몽골 등 각국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고 싶어했다.”

-피해영상물 삭제는 어떻게 이뤄지나.

“피해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요구하는 게 이미지 삭제다. 사설업체들도 삭제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2차 피해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삭제팀 인원이 17명인데, 노동강도가 너무 세서 취업난에도 지원자가 부족한 상황이다. 방심위에서는 URL 차단을 하지만 우리는 피해영상을 일일이 추적해 거의 수작업으로 삭제한다. 담당자들이 사명으로 여기니까 가능한 일이다. 이미지 삭제에 확신을 줘야 피해자가 의료·심리치료, 수사, 재판까지 갈 수 있다.”

-무엇이 ‘박사’ 조씨와 같은 괴물을 만들었을까.

취임 6개월을 맞은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 최현규 기자

“여성들을 노예라고 낙인찍고 피해자의 고통에 무감각한 것은 자신의 행위가 갖는 사회적 의미에 대해 눈과 귀와 머리를 닫아 스스로 해석을 정지한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조씨는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니라 불법 촬영한 성착취물을 죄의식 없이 오락거리로 소비하는 그릇된 성 인식, 사람을 도구 취급하는 과도한 소비문화, 사이버 공간에서의 탈인간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본다.”

-왜곡된 성문화를 바로잡을 방안이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은가. 저는 생애주기에 맞춰 지속적으로 교육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해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한 사회적 규범과 금기에 대한 내면화는 빠를수록 좋고 지속적일수록 좋다. 교육부, 인권위원회와 협력해 모든 공무원과 의사, 유치원 교사 등 민간으로까지 성·인권 감수성 향상을 위한 교육을 확대해 나갈 것이다. 교육의 시기를 놓친 성인들은 어쩔 수 없이 강한 제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최근 국민청원 답변에서 “국민의 법감정에 맞는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인가.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 통신매체 이용음란죄 등 디지털 성범죄 대상 양형 기준을 마련할 것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도 처벌이 약해지지 않도록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하한선을 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경우 아동 성착취물임을 알면서도 소지하면 10년형까지 선고될 수 있고, 영국은 5년 미만의 징역형, 독일도 3년 이하의 징역형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3년 이하 징역, 3000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법정형을 강화하도록 추진할 것이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에 대한 신고포상금제 도입도 추진한다.”

-국민일보가 만난 n번방 피해자는 주변 사람들이 알까 두려워 상담센터로 갈 의향이 없다고 했다.

“피해자들이 온라인 그루밍이나 협박으로 유입된 경우가 많은데, ‘내가 왜 그랬을까’라며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가 강요하는 ‘피해자다움’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그것이 바로 2차 가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추가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기관들에 꼭 연락을 주셨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 동행하는 것이 여가부가 하는 일이다.”

-디지털 성범죄자들은 웹하드, 다크웹에서 텔레그램으로, 이제 또 다른 온라인 메신저 디스코드, 텀벡스로 넘어가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가 과연 근절될 수 있을까.

“이번 n번방 사건이 그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가 진화하는 속도에 비해 디지털 성범죄자들이 진화하는 속도가 빠르지만 이제 어느 정도 구조가 파악됐다. 가해자들은 숨을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새로운 플랫폼에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경찰의 노하우가 생겼고, 다크웹 수사를 비롯한 국제공조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

-여혐과 남혐의 성 대결을 어떻게 완화할 수 있을까. 여가부가 여성만을 위한 부처라며 악플을 다는 이들도 있다.

“여가부는 여성과 청소년, 가족을 위해 존재하는 부처다. 1인 가구도 가족의 일원인데, 여기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 있나. 여가부는 모든 사회문제의 신문고와 같다고 생각한다. 여가부가 하는 일을 압축해 ‘사사살포’라는 말을 만들었다. ‘사람을 다루고, 사각지대를 다루고, 살 만한 사회를 만들고, 포용사회를 만드는 곳’ 그곳이 바로 여가부다. 악플도 고맙다. 산술적으로 평등을 해석하려 하지 말고 균형적 관점에서 봤으면 한다. 양성평등이라는 개념을 저울에 놓고 1㎜라도 누가 더 올라가고 내려가느냐를 보려 하면 갈등이 고조된다. 악플이 달리면 평등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실현하라고 눈을 부릅뜨고 있구나, 사회의 다른 불평등에 대해서도 그만큼 예민하다는 뜻일 테니 좋다. 평등 감수성의 시작이라고 본다.”

-희망적인 시각이다.

“우리 사회가 상호신뢰로 가는 병목에 있는 것 같다. 그 병목에서 다양한 사회문제가 갈등적 방식으로 표출되는데, 일종의 과도기다. n번방도 본질적으로는 하루 이틀에 생긴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고질화된 것이 지금 터진 것이다. 젊은 기자단이 용감하게 취재했고, 파헤쳐진 문제에 대해서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집단지성이 빠르게 작동됐다. 정책대응 속도 역시 예전과 다르게 빨라졌다. 고질화된 문제를 다 드러내고 용기있게 현실을 직시하는 단계다. 이런 변화와 노력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만난 사람=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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