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여의춘추

[여의춘추] 다시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리

배병우 논설위원


일시적 자연재해 아닌 ‘전염병 시대의 도래’라는 근본적 변화
코로나 이후 정부의 힘은 더 강해지고 일자리는 감소하며
脫세계화·미국 주도 국제질서 쇠락에 가속도 붙을 것
이미 시작된 변화의 속도 예상보다 훨씬 빠를 수 있어

몇 달 만에, 아니 몇 주 만에 전 세계가 바뀌었다. 그냥 변한 정도가 아니라 탈바꿈했다.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제외하고 이토록 짧은 시간에 개인의 일상이, 조직이, 경제와 사회가 송두리째 흔들린 적이 있을까. 모두가 1밀리미터의 100분의 1에 불과한 바이러스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 사태를 스치고 지나갈 일회성 이벤트로 여기는 이도 적지 않다. 대지진이나 태풍처럼 끝나면 과거의 일상이 다시 시작되리라 믿으며. 하지만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19가 일으킨 전 세계적 충격을 보면 근본적 변화가 일어났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전염병으로 무작위 다중(多衆)이 사망하는 시대의 도래. 첫째는 코로나20, 코로나21 등이 연이어 출현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21세기 들어 인류에게 치명적 피해를 입힌 유일한 전염병이 아니다.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계열만 따져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이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코로나바이러스의 마지막 변이라고 믿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두 번째는 인간의 대응을 어렵게 하는 코로나19의 교묘한 진화다. 전염력이 강할 뿐 아니라 바이러스 보유자가 무증상일 때도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는 점에서 특히 두렵다. 상당수 감염자가 미약한 증상을 보인다고 가볍게 볼 게 아니다. 노약자나 기저질환자에게는 치명적이다.

그래서 세계는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을 수 없다. 사이먼 존슨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경제학자는 “우리는 이미 코로나 이후(포스트 코로나) 세상에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알던 코로나 이전 세계는 끝났다는 것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 될 수도 있지만 코로나 이후 세상을 한번 그려보자. 가장 뚜렷한 특징은 더 세지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정부일 것이다. 최근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코로나 대응 경기부양안 규모는 2조 달러(약 2470조원)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0%다. 그러고도 벌써 제2 경기부양안 얘기가 나온다. 정부는 도산 위험에 처한 기업의 매출을 메워주는 것을 넘어 종업원 임금까지 책임질 태세다. 경쟁에서 뒤진 회사는 도태되는 ‘창조적 파괴’가 자본주의의 힘이라는 철칙이 무너지고 있다. 물론 비상시 대책이고 위기가 끝나면 과거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전쟁과 금융위기 때 한번 팽창한 정부는 그 추세를 되돌리지 않았다. 1, 2차 세계대전 이후 정부의 역할과 힘은 확연히 증가했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이미 개발연대의 관치경제 DNA가 강한데다 문재인정부 들어 경제와 사회에 대한 정부의 장악력이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자리에도 충격이 불가피하다. 코로나 시대의 특징은 직접적 접촉 최소화, 비대면 문화 확산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모든 조직이 재택근무, 격일·격주 근무, 인력 분산 등 다양한 근무 형태를 실험했다. 그 핵심은 감염원이 될 소지가 있는 노동력을 줄이고 이를 기술로 대체하는 것이다. 몇몇 대기업에서는 인력 감축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위기 때의 이 경험이 앞으로 ‘표준’이 될 수 있다. 코로나 시대가 길어질수록 4차 산업혁명과 맞물려 인력 절약형 고용이 더욱 확산될 것이다. 임시직뿐 아니라 전문직 등 안정적인 중산층 일자리에서도 광범위한 고용감축이 일어날 수 있다.

대외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본격화된 탈(脫)세계화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미국의 패권적 지위는 더욱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는 코로나 대응에서 자국민의 피해 최소화는 물론 국제 공조를 이끄는 데도 실패했다. 미국이 국제적 리더십을 잃는 데 이번 코로나 사태가 방아쇠가 될 수 있다.

세계가 거대한 격동과 변화의 시기에 들어선 것은 분명하다. 잊어선 안 될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정보통신기술(ICT) 발달로 변화의 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빠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바뀌었구나’ 인식했을 때는 변화가 이미 한참 진행 중이고, 우리는 후발주자로 전락할 수 있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앞으로 과거와 크게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이고, 그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배병우 논설위원 bwbae@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