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승장구하던 미국 셰일산업이 휘청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석유 수요가 급감한 데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석유 증산전쟁으로 가격경쟁력까지 하락하면서 생존 자체가 흔들리는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위기의 셰일산업을 구하기 위해 3일 관련 업계 CEO들을 만나기로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1일 미 셰일가스 업체 ‘화이팅 페트롤리엄’이 경영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파산을 신청했다고 보도했다. 노스다코타주 바켄 지역의 최대 셰일오일·가스생산업체였던 화이팅사는 경영난으로 2014년 110억 달러에 육박했던 시가총액이 지난달 기준 6200만 달러로 쪼그라든 상태다. 업체는 비용 절감 및 현금 흐름 개선 조치를 취했지만 코로나19에 따른 경기침체와 유가전쟁을 버틸 수 없었다고 밝혔다.

초대형 셰일업체인 옥시덴탈의 오스카 브라운 수석부사장도 최근 경영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폴 생키 미즈호증권 이사는 블룸버그통신에 “미국 내 원유 생산업체 6000곳 중 70%가 파산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내 막대한 양이 매장돼 있는 셰일오일·가스는 오랫동안 ‘그림의 떡’이었다. 유정을 시추한 뒤에도 천공, 수압 파쇄, 폐수 처리 등 복잡한 채굴 과정을 거쳐야 해 전통 석유산업에 비해 막대한 생산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상품 가치가 낮았던 셰일이 차세대 금광으로 각광받게 된 것은 ‘셰일혁명’ 덕이었다. 2008년부터 시작된 지속적인 기술 혁신으로 생산비용이 낮아지면서 다수의 에너지 기업이 은행에서 거액의 대출을 받아 앞다퉈 셰일산업에 뛰어들었다.

셰일오일에 힘입어 미국의 전체 원유생산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2018년 초 마침내 사우디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됐다. 해외 원유 수입량은 2005년에 비해 4분의 1로 줄어들었다.

셰일오일의 평균 생산원가가 배럴당 40달러 전후까지 낮아진 가운데 지난 5년간 국제유가는 배럴당 50달러 이상으로 유지되면서 셰일업계는 활황을 맞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석유 수요가 줄어들면서 위기가 닥쳤다. 게다가 지난달 러시아와 사우디의 석유 감산 합의 실패 후 사우디가 증산에 나서면서 국제유가는 배럴당 20달러대로 급락했다. 셰일업체들이 은행에 막대한 빚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익 위기는 줄도산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전망도 밝지 않다. 국제지정학적 경쟁에서 석유를 무기로 사용하는 사우디와 러시아에 미국의 셰일오일·가스는 눈엣가시였다. 산유국 패권 회복을 노리는 사우디는 증산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WSJ는 사우디에서 원유를 가득 실은 유조선이 정작 사겠다는 곳이 없어 해상을 떠돌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셰일산업 위기로 트럼프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도 차질을 빚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자국 이익이 있는 곳에만 개입하겠다는 미국의 신고립주의는 세계 1위 산유국이라는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중동산 석유에 연연하지 않게 된 미국은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시켰고 아프가니스탄과 종전 협상을 타결했다.

셰일 에너지를 기반으로 미 제조업 부흥을 이끌겠다는 계획도 꼬이게 됐다. 다급해진 트럼프 대통령은 3일 엑슨모빌, 셰브런, 옥시덴탈, 콘티넨털리소스 CEO를 백악관으로 불러 긴급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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