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큰일이 벌어진 뒤 “내 그럴 줄 알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거짓말이다. 변화무쌍한 세상일을 미리 알기란 어렵다. 조국 사태나 코로나19 사태의 발발과 진행을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느냐는 말이다.

지난해 여름부터 되돌아본다. 8월부터 10월까지 조국 사태가 온 나라를 뒤흔들었다. 연말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처리를 밀어붙였다. 해가 바뀌자마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임명됐고, 며칠 뒤 ‘윤석열 사단’을 해체하는 검찰 인사가 단행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회견에서 “조국 전 장관에 대해 마음의 빚을 졌다”고 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도 한동안 주요 이슈였다.

2월 중순에는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을 쓴 교수를 민주당이 고발하자 진보 인사들이 “나도 고발하라”며 분노했다. 이후 신천지 집단감염으로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했고, 마스크 대란이 이어졌다. 민주당은 “의석을 도둑맞게 생겼다. 미래통합당에 제1당을 내줄 판”이라며 통합당처럼 비례위성정당을 만들었다. 온통 정부·여당이 욕먹을 일이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무섭게 퍼지는 가운데 3월 중순부터는 코로나19 국내 확진자 급증세가 꺾였다. 외신의 찬사가 쏟아졌다. 역병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서구 선진국들과 대비되면서 한국은 일순간에 ‘방역 선진국’으로 우뚝 섰다.

어느새 ‘민주당만 빼고’라는 말은 쑥 들어갔다. 지금 총선 판세는 민주당이 의석을 도둑맞지 않을 것 같은 흐름이다. ‘부자 몸조심’하는 민주당은 유권자들이 정부의 공적을 금세 잊을까봐 염려하는 듯 유세 때 코로나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 최근 유승민 통합당 의원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무능하고 위선적인 문재인 정권보다 더 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선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무능’ ‘위선’ ‘더 잘할 수 있다’는 말을 하나씩 따져보자. 정권의 무능은 코로나 대처 노력 덕분에 많이 가려졌다. 경제는 다른 나라들도 모조리 망가지고 있으니 한국의 실정만 도드라질 리 없다. 그리고 통합당은 현 정권보다 잘할 수 있음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다.

남은 것은 정권의 위선이다. 이건 전혀 해소되지 않았고, 여당이 선거를 이긴다면 더욱 심해질 것 같다. 민주당 안팎의 기세등등한 친조국 세력이 눈엣가시 같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쳐내고 조 전 장관을 복권시키려 들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선거일까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현재의 여론조사 결과가 실제 표심으로 고스란히 이어질지도 알 수 없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것이 현재의 민의라는 점만 분명하다.

영화 ‘7인의 사무라이’(1954년)를 통해 민의라는 것을 되새겨본다. 어느 빈촌에서 산적의 약탈을 못 견뎌 대신 싸워줄 사무라이를 고용한다. 이들이 마을에 와서 보니 주민들은 그동안 전투에서 지고 도망치던 무사를 죽이고 물건을 빼앗아왔다. 이에 분노하는 동료에게 농민 출신 사무라이가 소리친다. “너희들 농민에 대해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런 독종도 없어. 선량한 척하면서 거짓말은 잘도 치지. 하지만 그런 괴물을 만든 건 너희 사무라이들이야!” 이후 처절한 전투 끝에 산적은 섬멸된다. 농민들은 흥겹게 노래 부르며 모내기를 한다. 살아남은 사무라이 리더가 동료 4명의 무덤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이번에도 진 싸움이었구나. 이긴 것은 저 농민들이야. 우리가 아냐.” 사무라이를 국회의원과 권력자로, 농민을 일반 국민으로 넓혀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권력자로 인해 고통받아 독종이 된 국민, 그래서 권력자를 잘 써먹는 국민으로 말이다.

천지우 정치부 차장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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