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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칼럼] 유권자도 품격이 있어야 한다


거대 정당은 유권자를 판단력 없는 어리석은 대중으로 보고
증오와 분노, 선동 기술 통해 중우정치를 하는 것
최소한 저질과 무능 걸러내야 그나마 최악을 피할 수 있어
내 선택이 의회와 국가 수준 결정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주위 사람들과 평가와 선택, 투표 참여 등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된다. 제한된 범위의 의견이기에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대강의 흐름을 느낀다. 흐름은 두 가지다. 이 지긋지긋한 정치, 저급한 정치인들을 보면 선택할 사람과 정당이 없어 투표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코로나19까지 겹쳐 많은 이들이 투표장에 가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투표율 걱정이 나온다. 다른 한 부류는 자기가 싫어하는 정당·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강력한 투표 의지를 가진 이들이다. 특정 당과 후보를 지지하는 선택이 아니라, 거의 완벽에 가까운 증오와 분노에 찬 투표행위다. 혐오 투표, 배척 투표라고나 할까. 증오와 분노가 클수록 투표 의지도 강하다. 점잖게 표현해서 정권심판, 야당 심판이라 부른다.

이런 부정적 흐름과는 상관없이 선거는 잘 굴러간다. 아무리 정치 무관심층이라도 거대 정당과 후보의 설레발은 금방 알아챈다. 허풍과 비현실성, 상대편 증오와 가짜뉴스가 있기 때문이다. 허황된 주장에도 늘 앞에는 국민을 위하고, 국민을 받들고,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 전제가 있다. 지금의 정치가 아무리 품격이 없다고 해도, 아무리 저질이라고 해도, 아무리 증오를 유일한 자양분으로 삼는다고 해도, 국민 즉 유권자가 선택해주지 않으면 권력을 지키거나 빼앗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유권자가 선택해주니 여당 권력이든 야당 권력이든 획득한다. 그러니 주기적으로, 약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국민만 보고 간다는 식의 교언이 나온다.

거대 정당의 선거운동 기술은 중우(衆愚)정치에 기반을 둔다. 오로지 국민만 위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유권자를 조종 대상으로, 판단력을 상실한 어리석은 대중으로 본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명분과 성사 과정, 현재 상황, 예상 결과를 보면 그렇다. 선거 결과의 합리성과 군소정당을 위한다는 제도가 역사에 없던 꼼수정당을 만들어내고, 수준 이하의 DNA 논쟁까지 일으키며, 결국 군소정당 표까지 흡수해버릴 탐욕적이고 지저분한 제도가 됐다. 그래도 사과나 해명 없이 바로 꼼수정당을 지지하라고 ‘협박’한다. 그런데 지지율은 또 근사하게 나온다. 유권자를 무개념자로 간주하고 조롱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선동가들이 우중(愚衆)으로 보지 않고서는 채택할 수 없는 선거 기술이다.

갑작스레 전 법무부 장관 조국을 불러내 감상적 구심점을 만들고, 상대방은 그걸 역이용해 이득을 얻겠다고 역선동을 하며, 한국인이면 누구나 눈이 뒤집히는 한·일전을 이번 총선으로 치환하는 건 다 중우정치 프레임의 단면이다. 적을 가진다는 건 우리 편의 정체성과 결집을 위해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검찰 개혁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명분에 ‘적=검찰, 그래서 조국 소환’ 이미지를 슬쩍 얹었다. 선동에서는 적이 없으면 우리 생존을 위해 적을 만들어 내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민주정에서는 선동가들이 나타나기 쉽다. 이들은 민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민중이 법 위에 군림하게끔 사태를 몰아간다”고 단언한 것은 그래서일 거다. 중우정치를 활용한 독재를 지적하고 민주정이 내포한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정략적 선거 기술은 이런 선동이 유권자에게 잘 먹힌다는 계산 아래서 만들어진다. 그 선동에 열광적 지지를 보내고, 그걸 바탕으로 코로나 진화하듯 더 자극적 선동이 나오고, 그걸 또 역이용하는 정치에 호응하는 유권자들이 있다. 효과적 선동 프레임의 작동원리다. 정치인이 국민과 유권자 이익을 위해 싸우는 게 정상인데, 마치 유권자가 정치인과 정파 이익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편저편의 이런 꼴 저런 꼴 다 봤으니 유권자도 품격 있는 선구안을 가져야 한다. 저질 정치(인)는 그렇게 만들어준 유권자가 있어 가능하다. 의사결정을 할 때 결정이 가져올 미래의 결과를 조금이라도 읽어내야 하는 건 상식이다. 차선은 언감생심, 최악은 피해야 한다. 그나마 차악이면 괜찮겠다. 차악이라도 선택하려면 무능과 저질을 골라내야 한다. 특히 꼼수정당 후보들을 보면 가관이다. 선동이든, 프레임이든, 신념이든, 마음을 정했더라도 다시 한번 진중하게 무능과 저질에 대해 생각해보자. 대한민국에서 정치·국가리더십이 실종된 지금, 품격 있는 유권자 선택은 결정적이다. 유권자가 의회의, 정부의, 국가의 수준을 결정한다.

김명호 편집인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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