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국제유가가 급락하며 전국 주유소 휘발유 가격도 10주째 하락해 이번 주에 ℓ당 평균 1300원대로 마감했다. 일부에서는 1200원대인 곳도 적지 않다. 5일 서울시내의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ℓ당 1258원에 팔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간 감산 합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국제 석유 시장이 최악의 상황은 면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11.9% 오른 배럴당 28.34달러로 마감됐다. 18년 만에 최저치로 곤두박질쳤던 유가가 전날엔 24.67% 폭등하는 주간 최대 오름폭을 보였다. 국제원유 수요가 하루 1800만~2000만 배럴까지 줄어들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적극적인 가세에 따른 글로벌 감산공조로 국제유가가 안정을 되찾을지 주목된다.


다만 5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감산 협상 결렬이 사우디가 미국 셰일오일 업계를 겨냥한 때문이라고 한 발언에 사우디 외무부가 반박하는 성명을 내면서 양국 간 유가전쟁이 감정싸움으로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인지 6일 예정됐던 OPEC+(OPEC과 10개 주요 산유국의 연대체 회의) 회의가 9일로 갑자기 미뤄졌다.

두 나라가 9일 OPEC+ 회의를 열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예상한 하루 1000만~1500만 배럴 감산 목표에 쉽게 합의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세 나라의 셈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사우디는 정권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가 왕위계승을 앞두고 있어 대외명분상 이번만큼은 혼자 감산 총대를 멜 수 없다는 분위기다. 즉, OPEC+ 국가뿐 아니라 다른 산유국들도 모두 감산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러시아는 미국도 감산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임 개헌을 앞둔 푸틴이 국제적인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러시아는 그동안 미국 석유회사들이 감산으로 인해 반사이익을 봐왔다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의 감산 공조 참여도 녹록해 보이진 않는다. 우선 생산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을 제한하는 미국의 반독점법이 버티고 있다. 게다가 엑손모빌처럼 낮은 생산단가와 효율성을 갖춘 메이저 정유업체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도산하는 업체들을 인수하려는 계산하에 감산 합의에 반대하고 있다. 미국석유협회(API)도 감산보다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 셰일오일업계는 원유가 배럴당 평균 45달러는 돼야 채산성을 유지할 수 있어 디폴트 위기에 처해 있다. 자연 감산이 불가피한 쪽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이를 감당하지 못한 덴버 소재 셰일업체 파이팅석유는 지난 1일 파산선언을 할 정도로 셰일업계는 난관에 봉착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와 러시아가 합의하지 못할 경우 관세를 부과하겠다거나 사우디에 군사 원조를 축소할 의향을 내비치는 등 은근히 협박하는 것도 결국 이 같은 어려움들을 감안한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는 관측이다. 관세 부과 압박에 캐나다도 동참할 분위기다.

하나금융투자는 이번 협상이 성공할 경우 “러시아는 국민 투표 직전에 강한 국가의 모습을 확인시켜주는 명분을, 사우디는 실제 증산을 실행했다는 점에서 대표 산유국의 지위를 강화하는 명분을 갖게 되고, 미국은 외교 협상을 주도하여 불확실성을 제거했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트럼프나 푸틴의 희망대로 최소 하루 1000만 배럴을 감산하더라도 일단 한숨을 돌리는 데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국제유가를 30달러 선에서 방어하는 감산 수준밖에 안 된다고 추산했다. 코로나19 여파가 여름까지 이어질 경우 감산효과가 희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베스트증권은 “4월 말~5월 미국·유럽 내 코로나19 확산세가 정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진단능력의 부재와 당국의 미온적인 대처, 외부 유입에 따른 재발 가능성 등이 사태를 더 장기화할 수 있어 원유 수요 감소폭은 더 강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