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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진화해가는 아동성범죄 유형

김혜진 글로벌디지털성범죄정책연구소 대표


아동의 성을 잔인하게 착취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코로나 관련 이슈를 덮어버릴 정도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가해자와 이용자의 신상을 모두 공개하고 강력하게 처벌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와 20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을 만큼 국민들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필자 역시 국회에서 비서관으로 재직할 때부터 조두순 사건, 나주 초등생 성폭행 사건, 도가니 사건 등을 실질적으로 다루며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본 경험까지 있기 때문에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의 심각성과 잔인함에 대해선 누구보다 뼈저리게 절감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이번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그 잔인함과 악마적인 발상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으며 우리가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회의감과 공포감까지 들게 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아동 대상 성폭력 사건은 조두순, 김수철처럼 아동과 접촉해 직접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유형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텔레그렘 n번방 사건은 아동 대상 성범죄가 기존과는 다른 양상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n번방 사건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의 특징은 성적 학대와 과학기술이 결합해 만들어진 새로운 유형의 성범죄라는 점이다. 특히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에도 영상이 지속적으로 유포되는 등 피해 사례가 확대 재생산된다는 점은 디지털 성범죄가 기존 성범죄와는 그 궤를 달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n번방 사건의 경우 성적 그루밍과 유인 등으로 다수의 피해자를 물색하고 공무원까지 동원해 개인정보를 파헤치는 동시에 비밀 폭로를 미끼로 협박까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범죄 수법이 더욱 악랄해지고 치밀해졌음이 드러나고 있다. 또한 이러한 협박에 못 이겨 피해 아동이 스스로 만든 이미지나 영상물을 가해자들이 상업적으로 거래해 왔다는 사실은 아동 대상 성범죄가 이전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양상으로 변화했음을 나타내준다.

기존의 아동 대상 성범죄와 달리 n번방 사건은 익명성이 보장된 다수의 그룹들이 불특정 피해 아동을 대상으로 성 착취를 자행, 가공할 만한 피해를 양산하고 있는 만큼 지금까지와는 대응 방식부터 달라야 한다. 즉, 이전의 아동 대상 성범죄 사건과 n번방 사건의 차이점을 면밀히 파악, 디지털 성범죄에 강력히 대응해야 할 시점이다.

미국과 호주, 영국에서는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법률에 ‘성 착취’ 개념을 도입,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명문화하고 있다. 필자 역시 아동 대상 성범죄에 대한 전 세계 법안과 정책들을 연구한 결과 우리나라 역시 ‘성 착취’에 대한 개념을 법률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를 성매매 관점에서 접근하는 시선이 만연해 있는데 이는 매우 심각하고 위험한 인식이다. 해외에서는 성 착취물의 다운로드, 시청, 관음에 대해 강력한 처벌 규정을 상세히 마련하고 있으며 성 착취 동영상 삭제 및 피해자 지원 방안도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가해자 처벌 및 피해 회복을 위한 법적·제도적 지원책이 미비하며 무엇보다 아동 디지털 성범죄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에서부터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n번방 사건은 이러한 그릇된 인식과 제도 미비의 토대 위에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적극적인 감시자가 돼 아동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강력히 대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디지털 성범죄의 잔혹성과 불법성을 명확히 드러낼 수 있는 용어가 필요하다. 그런 이유에서 n번방 사건의 명칭을 ‘텔레그램 아동 성 착취 사건’으로 지칭할 것을 제안하며, 디지털 기술을 악용한 아동 성 착취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근본적 인식 개선을 촉구한다.

김혜진 글로벌디지털성범죄정책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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