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추가 연장했다. 거리두기 전략이 성과를 내고 있다는 판단이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는 긴장감이 배어난다. 그도 그럴 것이 유럽의 확진세는 상상을 초월한다. 6일 기준 스페인의 누적 확진자는 13만여명, 사망자는 1만2000여명에 달했다. 유럽 전체로는 64만6000여명 감염, 4만9000명 사망이다. 미국은 33만5000여명의 누적 확진자, 9000여명의 사망자가 나오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시상황’을 들먹였다. 미국은 누적 확진자 세계 1위란 오명을 썼다.

확진자 1만284명, 사망자 186명. 우리나라의 감염 현황이다. 참혹한 통계지만 다른 주요 선진국에 견주어볼 때 파장이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외국 언론을 접하면 한국 사례가 꾸준히 등장한다. 진단검사가 빠르고 효율적이라는 부러움 섞인 보도다. 개방적인 감염병 대응에 놀라움도 표한다. 도시 봉쇄와 자택격리 ‘명령’으로 대응한 주요 국가의 전략과 확연히 구별되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몸살을 앓았던 사재기 광풍은 관찰 불가다. 마스크 대란 극복 노하우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의료진의 헌신과 시민의식이 빛났다는 평가다. 장비와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의료진의 사투는 의료체계 붕괴를 막으면서 무난한 초기 대응을 가능케 했다. 개인위생 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물리적 거리두기를 실천했던 평범한 시민의 역할도 돋보였다. 드라이브스루, 마스크 판매 이력제 등 현장 전문가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힘을 발휘하면서 오락가락 대응으로 흐느적거렸던 정부를 곧추세웠다. 재난을 극복해 가는 창의적인 민관 협력의 사례로 언급되는 것이 과하지 않다.

심리적 방역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뼈아프게 들어야 한다. 감염병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을 대척하면 자연스레 불안과 공포가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여기에 의심증과 무기력증이 동반된다. 불안이 심해지면 이분법적 사고가 고개를 들고 불안을 뒷받침해 줄 어떤 정보라도 수용할 준비가 된다. 근거 없는 뜬소문이 퍼지면서 공포가 증폭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가짜 감염자 정보, 확진자 방문업소에 대한 과도한 경계감, 치료제에 대한 검증되지 않은 속설이 퍼지면서 심리적 방역이 위협받는다. 팬데믹 못지않게 희생자를 만들고 공포를 증폭시키는 것이 ‘인포데믹스’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감 방역의 부재도 심각하다. 시민의식이 찬사를 받지만 정작 우리 주위에 확진자의 존재감은 없다. 왜 그럴까. 물리적 방역은 개인 방역을 중시하고 일탈자에 대한 책임 묻기에 집중함으로써 ‘낙인찍기’를 일상화했다. 확진자들은 미안함, 두려움, 자책감에 빠져 자신만의 공간으로 숨어들고 공공의 영역에서 이탈했다. 완치됐다는 의료진의 말을 들어도 믿을 수 없는 이유는 사회로부터 받게 될 비난과 혐오를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얼마 전 미국 CNN 방송의 스타 앵커이자 현 뉴욕 주지사의 동생인 크리스 쿠오모가 확진됐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쿠오모는 확진된 이후에도 자택 지하에서 방송을 이어갔다. 그의 표정은 핼쑥했고 비장했지만 희망의 빛을 머금었다. 자신의 처지를 공유하며 확진자들과의 공감을 주문했다. 시청자들은 뉴욕 방역을 총지휘하는 주지사의 동생조차 감염됐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누구도 쉽게 감염병에 걸릴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배웠다. 쿠오모가 미국 전역의 확진자에게 공감을 표하고 그들의 처지를 대변할 때, 미국 국민들은 이 혈투가 단순한 감염병과의 싸움 그 이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자신과 친밀한 사람, 믿고 따르는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공감 능력을 발동한다. 확진자를 직간접적으로 대면할 기회가 생길 때 그들의 고통과 처지에 역지사지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렇게 진정한 공동체 정신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된다.

낙인찍기는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별해 국민의 단결력과 연대감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초유의 재난에 맞서는 국민에게 이 싸움의 의미를 감염병 척결로 국한시키고, 실체 없는 연대감에 취하게 할지 모른다. 확진자와 완치자가 용기를 내어 경험을 나누고 국민이 위로의 손을 내밀 때 진정한 연대감이 생길 수 있다. 이제 우리의 방역은 공감 방역으로 확장돼야 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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