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광희 (4) 함석헌 선생, 존경하는 여성으로 내 어머니 꼽아

안동 김씨 유교집안에 시집 온 외할머니, 딸 교육시키기 위해 기독교에 입문

이광희 디자이너의 외할아버지(왼쪽)와 외할머니.

어릴 적 우리 집은 인권운동가이자 기독교 문필가인 고 함석헌 선생, 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 등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인들의 사랑채였다.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가 쓴 ‘내가 본 함석헌’엔 이런 내용이 있다.

“함 선생님은 평생 존경한 여성을 두 명 꼽았는데 한 명은 자신의 어머니였고 다른 한 명은 김수덕 여사였다.”

김수덕 여사는 나의 어머니다. 함 선생님이 ‘존경하는 여성’이라 말한 어머니는 40㎏도 안 되는 가녀린 체구에도 수십 년간 수천 명이 넘는 해남등대원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느라 조리사부터 청소부까지 모든 일을 홀로 감당했다. 어머니를 그런 강단 있는 여성으로 키워낸 분은 열행비문(烈行碑文)까지 받은 외할머니였다.

외할머니 이야기는 1980년대 라디오 드라마였던 ‘전설 따라 삼천리’에나 나올 법했다. 인동 장씨 양반가에서 태어난 외할머니는 전남 고흥군의 안동 김씨 유교 집안으로 시집갔다. 일제 강점기에도 끝까지 상투를 고집할 정도로 완고한 선비들의 마을이었다.

언젠가 외할머니는 몸져 누운 외할아버지를 살리겠다며 자신의 허벅지살을 두 번이나 떼어내 먹이셔서 살리셨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성균관에 상소를 올렸고 나라에선 열녀문을 내렸다. 지금도 고흥에 가면 마을 입구에 그 열녀문을 볼 수 있다.

막내딸이었던 어머니에게 학업의 길을 열어주신 것도 외할머니였다. 완고한 반촌마을에서 여자가 공부를 한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시절이었다. 외할머니는 선교사에게 보내면 여성도 공부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어머니가 학업을 할 수 있게 기독교에 입문하셨다. 그 덕에 어머니는 순천 매산여학교에 들어갔다. 이 학교는 1910년 미국남장로회 한국선교회가 기독교 교육을 위해 개교했다.

외할머니는 열심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셨다. 이런 일화가 있다. 경남 남해에 살던 아들의 집에 기거했을 때의 일이다. 일제강점기 기독교인들을 탄압할 때도 두려움 없이 경찰서 앞과 산에서 엎드려 매일같이 기도했다. 보다 못한 일본인 경찰서장이 하루는 엎드려 기도하는 외할머니를 때리고 발로 찬 뒤 돌아갔다. 그 후 서장은 시름시름 아파 드러눕게 됐는데 백약이 무효였다. 차도를 보이지 않자 부하 경찰이 외할머니의 기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부하 경찰의 간곡한 부탁으로 외할머니가 그를 위해 기도했더니 놀라운 일이 생겼다. 서장은 건강을 되찾았고 외할머니를 극진히 보살폈다고 한다.

광복 직전에 고흥으로 돌아온 외할머니는 처음에 다니던 관리교회에 일본인들이 빗장을 쳐놓은 걸 보셨다. 빗장을 뜯고 들어가 기도하는 가운데 조국의 해방을 맞았다.

외할머니는 유교 사상에 따라 생활하면서도 지역의 과부와 극빈자를 돌봤다. 여성 차별이 심하던 시절 여성들만의 신앙모임을 마련하셨고 딸의 공부를 위해 백방으로 나섰다. 기도도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외할머니의 삶은 어머니, 그리고 내게도 영향을 줬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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