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지역 한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보육교사 A씨(40·여)는 지난달 어린이집 원장으로부터 황당한 요구를 받았다. 원장은 “코로나19 때문에 원생들이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있어 경영이 어렵다”면서 지급된 월급에서 60만원을 인출해 어린이집 운영비로 내라고 했다.

A씨가 머뭇거리자 원장은 “싫으면 월급 다 주는 어린이집으로 옮겨라”며 사실상 협박했고, A씨는 결국 원장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원장에게 60만원을 건네고 A씨 통장에 남은 급여는 100만원을 갓 넘긴 수준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석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일부 어린이집에서 고질적인 ‘페이백’ 관행이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와 참여연대는 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건복지부는 페이백 근절 방안을 마련하고, 보육교사의 임금 지급을 국가가 직접 책임지라”고 촉구했다. 페이백이란 어린이집 원장들이 보육교사 등에게 지급된 임금 일부를 현금으로 돌려받는 불법적인 행태다.

민주노총이 지난 1일부터 엿새간 진행한 실태조사에서 1200여명의 응답자 가운데 31.1%가 “페이백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2.9%는 코로나19 휴원기간인 올해 2~3월 사이에 페이백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2~3월에 처음 페이백을 요구받았다는 응답도 73건에 달했다.

원장이 페이백을 요구하며 언급한 사유로는 “어린이집 운영이 어려우니 협조해 달라”는 응답이 57.4%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복지부가 지난 2월 말 어린이집에 긴급보육 경비를 지원하겠다고 밝혔음에도 운영난을 빌미 삼아 페이백을 받아낸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페이백은 주로 교사가 급여 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해 원장에게 직접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일부는 원장이 지정한 제3자에게 현금을 전달하거나 제3자의 계좌로 송금하기도 했다.

일선 교사들은 페이백 관행이 공공연한 어린이집의 악습이라고 증언했다. 경기도의 한 어린이집에서 10년여간 근무하다 지난 2월 퇴사한 B씨(56)는 “(원장이) 당국에는 교사가 9시간 근무했다고 보고하고 실제로는 7시간만 일을 시킨 뒤 시에서 나오는 수당을 페이백하라고 요구하곤 했다”고 말했다.

함미영 보육지부장은 “페이백은 코로나19 때문에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보육 현장 종사자 모두가 알던 오랜 악습”이라며 “보육교사의 임금을 현금으로 갈취하는 대담한 행각이 이뤄질 정도로 어린이집은 엉망”이라고 지적했다.

보육지부는 이번 실태조사로 페이백 사실이 드러난 어린이집 명단을 복지부에 제출할 방침이다. 함 지부장은 “단속은커녕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복지부가 (위법 사실이 드러난) 어린이집부터 시정해나갈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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