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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선거법 재개정 총선 직후 바로 시작해야

김한나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박사후과정연구원


선거제도 개혁의 본래 취지는 대표성을 높이자는 데 있었다. 다수제 중심의 선거에서는 항상 거대 양당이 의석을 독점하기 쉽고, 비례 의석은 전체 300석 중 47석에 불과하기 때문에 소수당들은 언제나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비례 의석을 더 늘리고, 지역구에서 얻은 당선자 수를 고려해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나누는 방식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등장한 것이다. 그렇게 선거제도를 바꿀 수 있다면 양당 독점 체제가 무너지고 다양한 세력들이 원내에 진출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선한 의도가 언제나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4+1 협상’에서 선거법 개정안은 당초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누더기가 됐다. 우여곡절 끝에 얻은 결과였지만 ‘결함’이 내재해 있기 때문에 그 효과는 별로 획기적이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결함이란 대표성을 높이겠다는 목표가 달성될 수 없도록 설계된 제도 자체의 결함, 그리고 위성정당이란 부정행위를 막을 수 없는 운용상의 결함을 말한다.

제도적 결함이라면 대표성을 보장하기에는 비례대표 의석의 파이가 너무 작다는 것이다. 연동형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선 일단 비례대표 의석수부터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 연동형을 실시하는 독일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의 비율이 1대 1로 동일하고, 뉴질랜드 또한 1.4대 1로 비등하다. 하지만 우리는 방식만 병립형에서 연동형으로 바꾸었을 뿐 의석 구성에서는 여전히 비례대표 47석으로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연동배분 방식에도 한계가 있다. 연동의 효과를 절반만 설정해 놓은데다 이번 총선은 비례대표 의석 30석에만 연동형을 적용하겠다고 캡(cap)을 씌웠다. 그래서 정치 개혁을 위해 룰을 바꾸었지만 당초 목표로 했던 효과는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이렇게 제도만 놓고 보아도 이미 거대 양당들에 유리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하지만 양당은 여기에 더해 위성정당까지 창당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를 방치해 결과적으로 선거제도 개혁 실패의 종지부를 찍었다. 국민들은 이렇게 될 거면 그 숱한 혼란을 불러온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고 있고, 정당들은 서로에게 그 책임을 돌리고 있다.

어떻게 고쳐야 할까? 처음부터 대표성 강화에 동의했다면 그 개혁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도록 비례대표 의석수부터 충분히 늘리고 위성정당처럼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행위는 사전에 철저히 방지해야 한다. 만약 대표성 강화에 동의할 수 없다면 차라리 예전의 병립형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 이대로 위성정당의 문제를 방치한다면 병립형이나 준연동형이나 대표성 강화의 효과 측면에서 별반 차이는 없는데 의석수 계산의 절차만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대표성이냐 아니면 체제 안정성이냐, 상충할 수 있는 두 가치 중 무엇이 우리에게 더 시급한지 논한 다음 어느 한 가치를 선택했다면 효과가 제대로 보장되도록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할 지점은 정치적 합의의 부재다. 지난해 선거법 협상 과정은 극심한 당파적 갈등으로 인해 선거제도 변경으로 확립할 가치가 무엇인지 제대로 합의조차 되지 못했다. 선거는 국민의 대표를 결정하는 중대사이므로 다수로 밀어붙여 단숨에 해치워 버릴 사안이 결코 아니다. 시간이 걸릴지라도 상대를 도려내야 할 적이 아닌 협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대표성 강화에 대한 사전 합의부터 다시 이끌어내야 한다.

언제 바꾸어야 할까? 총선이 끝난 직후 선거제도를 다시 논의하자. 혹자는 할 일이 많은데 선거법으로 또 싸워야 하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오히려 선거법을 개정할 수 있는 적기다. 다음 선거까지 4년이나 남았으니 이해관계보다는 원칙과 명분을 더욱 떠올릴 수 있는 좋은 시기다. 잘못된 선거제도에 대한 비판이 생생해 개정의 원동력도 있다. 22대 총선에서 또다시 지금과 같은 혼란을 반복할 수는 없다.

김한나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박사후과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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