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쪽나무 열매와 이로 만든 제품. 제주 생물종다양성연구소 제공

2015년 제주 생물종다양성연구소에 낭보를 담은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연구원들이 5년 넘게 준비한 까마귀쪽나무 열매의 골관절염 완화 연구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건강기능식품 관절·뼈 건강 분야의 기능성 원료로 개별인증을 받은 것이다.

제주산 생물자원에서 기능성 원료를 추출해 특허출원을 받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식약처로부터 기능성 원료로 개별인증을 받은 것은 전혀 다른 의미였다. 제주산 까마귀쪽나무가 ‘기능성’이라는 세 글자를 달고 직접 소비자를 찾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제주도민들에게 신기하고 반가운 뉴스이긴 마찬가지였다. 해안가 마을 곳곳에서 방조림이나 방풍림으로 흔하게 쓰이다 개발과 함께 베어졌던 까마귀쪽나무 안에 사람의 연골을 보호하고 염증을 완화하는 유용한 성분(리세놀라이드)이 들어있을 줄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동네 식물자원의 위상이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생물종다양성연구소가 문을 연 후, 제주도 육상 식물 추출물이 건강기능식품 원료로 인정받은 것은 까마귀쪽나무가 처음이다.

식약처 인증 후 제주엔 기업들의 러브콜이 잇따랐다. 이듬해인 2016년 첫 상품이 판매됐고, 최근에는 또 다른 대형 제약회사가 골관절염 완화 기능성 제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해안가 개발로 쑥쑥 잘려나가던 까마귀쪽나무는 이제 마을 영농조합법인이 야심차게 재배하는 주산물이 됐다.

세계는 이미 ‘종의 전쟁’ 시대로 접어들었다. 1300만종 내외로 추정되는 지구상의 생물종 중 인간에게 알려진 것은 20%를 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매년 개발과 오염으로 2만~5만종이 사라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사회에서 생물종의 문제는 보전의 문제이면서, 구체적으로는 국가의 이익에 관한 문제다. 어느 나라의 생물자원을 활용해 다른 나라가 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면 그 이익은 어떻게 나눠야 할까. 생물을 둘러싼 보전과 이익 배분의 물음표에 대해 국제사회는 생물다양성협약과 나고야 의정서를 통해 해결점에 접근해왔다. 1992년 브라질 리우회의에서 채택된 생물다양성협약은 말 그대로 생물종을 보호하고 희귀유전자를 보전하는데 국제사회가 힘을 합치자는 약속이다. 2010년 나고야의정서는 생물자원을 활용하며 생기는 이익을 공유하기 위한 지침을 담고 있다. 각국에 생물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당부한 것으로, 우리나라는 2017년부터 해당국이 됐다.

제주 생물종다양성연구소는 이처럼 우리나라가 국내 생물 유전자원을 발굴하고 자원 이용을 위한 자료를 본격 구축해야하는 과제를 수행하는 시기인 2007년 문을 열었다. 전국에 모두 18개의 지자체 생물종 연구소가 있지만, 생물 다양성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이란 국가적 과제와 ‘지역 자원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지역적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도록 설립된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제주가 한라산이라는 거대하고 다채로운 생물자원 서식지를 보유하고 있는 점이 주효했다. 제주의 까마귀쪽나무가 몇년 뒤 기능성 재료로 인정받아 고부가가치의 옷을 입게 된 데에는 이 같은 제주 생물종다양성연구소의 탄생 배경이 있었다.

제주 생물종다양성연구소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 보전과 이용이다. 우선 생물 자원의 보전을 위해 생물 사진을 촬영하고 표본을 보관하고 생물의 DNA(유전정보)를 보관한다. 이는 특정 생물이 제주의 자원임을 입증하는 자료가 된다. 또 다른 역할은, 생물 자원의 이용을 위한 연구와 기술 개발. 생물의 기능성을 검증하고, 특허 출원의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기업에 기술을 이전해 제품화를 지원한다.

그동안 제주 생물종다양성연구소가 제주 천연자원의 효능을 입증해 특허청에 특허를 출원한 것은 항염, 항산화, 항비만, 항당뇨, 간기능개선 등 모두 9가지다. 여기에 탈모와 인지기능 등에 관한 특허 출원이 조만간 8개 추가될 예정이다. 풋귤이 주름개선에 좋고, 흑무가 간 기능 개선에 도움을 주며, 몸국의 재료가 되는 경단구술모자반에 콜라겐 생성을 촉진하는 성분이 들어있다는 것들을 밝혀내고 있다. 연구 성과는 논문 게재와 특허 출원, 식약처 인증을 통해 제주도의 생물자원이 고부가가치 산업의 원자재로 활용되는 탄탄한 다리가 되어준다. 이미 연구소의 앞선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제주산 원재료를 함유한 화장품과 비누, 과자, 음료, 술, 식초, 섬유제품 등이 만들어져 면세점과 온라인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아울러 제주 생물종다양성연구소는 제주에 서식하는 육상식물, 해조류, 곤충, 버섯 등 다양한 생물자원을 수집해 이들에 대한 정보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일반에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 실린 생물자원 정보는 산업화 소재로 개발되는 자원에 대한 정확한 정보로 기능하거나, 유전자 분석을 통해 제주에 서식하는 생물자원의 기원을 추적하고 유입 경로를 밝히는 데 활용된다.

2007년 개원 후 지난해까지 제주 생물종다양성연구소는 식물, 해조류, 곤충, 미생물, DNA, 천연추출물 등 총 4296종 2만5120점에 달하는 생물자원 정보를 구축했다. 각각의 자원은 고부가가치 산업화의 원료가 되는 동시에, 제주도 생물주권의 근거로 작동하고 있다.

▒ 정용환 제주 생물종다양성연구소장
“제주도 생물자원, 한국의 미래 고부가가치산업 원재료 될 것”



“세계는 이미 각국의 생물주권 각축장이 됐습니다. 종의 전쟁 시대에 돌입한 겁니다.”

지난 10일 제주 생물종다양성연구소에서 만난 정용환(사진)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우리가 느끼지 못 하고 있을 뿐 제주도의 다양한 생물자원이 모두 제주, 아니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고부가가치산업 원재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소장은 “제주에 생물종이 많다는 것은 그 만큼 제주의 잠재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자원의 보전과 자원에 숨겨진 기능을 연구하고 상품화 기술을 개발하는 생물종다양성연구소의 역할은 그래서 중요하다”고 했다.

생물자원은 먹거리가 되고, 천연 의약재료가 된다. 그는 “실제 타미플루 등 많은 약들이 천연 소재에서 개발되고 있다”며 “코로나 치료에 제주산 생물 자원 추출물이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일각에선 연구소에서 제대로 된 연구를 하는지 걱정도 하지만, 연구원들은 오늘도 내일도 제주의 미생물, 버섯, 해조류 등 무궁무진한 자원과 씨름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 연구원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연구과정을 지켜봐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의 말이었다.

정 소장은 생물종다양성연구소 1호 연구원으로 들어와 소장직을 두 차례 역임한 연구소의 산 증인이다. 그는 “까마귀쪽나무 열매에 효과가 입증되자 나무를 베어냈던 마을이 다시 묘목을 받아 나무를 심고 있기 시작했다”며 “제주의 자원을 산업소재로 잘 이용하면 주민과 기업의 소득이 늘고 고용이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했다. 또 “제주의 바이오 산업은 우리 연구소가 충분히 책임져 나갈 수 있다”고도 했다.

제주 함덕초등학교 선흘분교 학생들이 제주 생물종다양성연구소 주관 ‘두점박이사슴벌레 방사’행사에 참가한 뒤 기념촬영 하고 있다. 제주 생물종다양성연구소 제공

연구소는 올해 또 하나의 ‘설레는’ 계획을 추진중이다. 연구소가 자리잡은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신례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생물다양성 교육을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주변 오름과 습지를 주기적으로 탐방해 다양한 서식생물을 익히게 하고, 과학경진대회에도 참여해 볼 요량이다.

그 첫 순서로 올해는 아이들과 학교에 있는 식물에 이름표 붙여주기를 진행한다. 이는 미래의 주역들이 우리 세대에서 처럼 환경자산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도록 붙들어두기 위한 기성세대의 노력이다. 아울러 연구소 설립 초기 생물종다양성연구소의 가치를 알아보고 6만6000㎡ 규모의 신례공동목장 부지를 무상으로 기부한 주민들에 대한 답례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학교 인근 숲에서 두점박이사슴벌레를 채집하는 모습. 제주 생물종다양성연구소 제공

정 소장은 “연구소에 소중한 마을 자산을 내어준 주민들의 마음에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며 “생물다양성 교육이 폐교 위기에 처한 신례초등학교를 살리는 데에도 작은 힘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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