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광희 (8) ‘꽃 사람’ 되고 싶다던 어머니, 평생 베푸는 삶

교인들 선물·별미 보내오면 어김없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해 ‘사람은 사랑과 배려 먹고 산다’ 가르쳐

2002년 전남 해남의 사택에서 기도하는 김수덕 사모의 손을 넷째 딸인 이광희 디자이너의 남편 홍성태 한양대 명예교수가 촬영했다.

어머니는 90 평생 ‘꽃 사람’이 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젊은 시절 쓰신 일기에서도 어머니는 꽃을 이야기하셨다.

“꽃을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는데, 사람을 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나도 꽃 한 송이 같은 꽃사람이 되고 싶다. 식물꽃은 땅속 진액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꽃은 예수님께 접붙임을 받아야만 된다.”(1968년 1월 22일)

어머니는 꽃처럼 사람들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셨다. 교인들께 선물이 들어오거나 별미의 음식이 들어오면 식구들에게는 ‘눈으로만’ 먹게 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내셨다. 자식 입장에선 때로 섭섭했다. 5남매인 우리는 왜 그렇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주냐고 불평 아닌 불평을 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못 먹어서 탈 나는 게 아니고 많이 먹어서 탈이 나는 거야. 보는 걸로 이미 배불렀다. 그리고 우리보다 더 필요한 사람에게 가는 것이 좋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딸이 패션 디자이너인데, 정작 어머니는 고운 옷을 입으신 적도 없다.

어머니는 6·25 전쟁 때 남편과 자식을 잃은 여성들의 애통해하는 마음에 함께하기 위해 무색 무명옷을 평생 입고 지내신다고 했다. 한번은 어머니가 평소와 전혀 다른 옷감의 옷을 입고 서울에 오신 적이 있다. 무명옷만 입으시던 어머니의 달라진 모습에 기뻐하던 것도 잠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얼마 전 우리 집에 오셨을 때 지하실에 버리려고 놔뒀던 커튼 천을 가져가신 것이었다. 곰팡이가 피고 해진 천을 깨끗이 빨고 삶아 곱게 옷을 지어 입으셨다. 내가 마지막까지 본 어머니의 옷들 중에는 30~40년 돼 누덕누덕 덧대고 기운 한복 두 벌과 커튼으로 만든 옷 한 벌 등이 전부였다.

어머니의 삶 속에는 늘 기도가 있으셨다. 하루를 빠지지 않고 새벽 기도를 나가셨던 아버지 옆에는 늘 어머니가 함께하셨다.

어머니는 “기도는 호흡과 같다. 마치 영이 숨 쉬는 밥과도 같다”고 일기장에 적으셨다.

자식들에겐 삶의 이정표를 세워주시는 말씀을 나누시곤 했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에서 스스로 삶의 지혜를 깨닫도록 유도하셨다.

한번은 어머니가 이런 질문을 하셨다. “사람은 사람을 먹고 산다. 사람은 먹을 것이 없어도 살지만, 먹을 사람이 없으면 죽는다. 너는 사람에게 먹혀 봤느냐.”

‘사람은 누군가의 사랑과 배려를 먹고 산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씀에 ‘과연 나는 누구에게 얼마나 먹혀 봤을까’ 물음이 들었다.

한번은 내가 어려운 일이 있어 장거리전화로 하소연했더니 “오늘도 참아 봤느냐”라는 말씀만 답변으로 돌아왔다. 더 여쭤봐도 “그냥, 참아봐라….” 그게 전부였다.

나이가 먹고서야 그것이 엄마의 각고의 경험에서 나온 말씀임을 알았다. 인내하며 주신 대로 받고 감사하며 살라는 어머니의 말씀들은 내 삶의 기준이 됐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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