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 비트코인 1개가 2800만원까지 치솟았을 때 투자 경고의 예로 튤립이 자주 등장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튤립 투기가 성행해 튤립 구근 1개가 집 한 채 값에 달했다가 거품이 꺼지면서 가격이 바닥까지 폭락했듯 가상화폐 투자도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였다. 그런데 최근 튤립 값이 진짜 0원이 됐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2일(현지시간) 네덜란드의 최대 꽃시장에서 튤립 가격이 하락을 거듭하다 결국 0원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수출길이 막힌 데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꽃이 안 팔려서다. 튤립은 통상 3월과 5월 사이 8주 정도가 성수기다.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 부활절(4월 12일), 세계 어머니의 날(5월 둘째주 일요일) 등이 몰려 있어 이 시즌에만 76억 달러(약 9조2400억원)의 매출이 발생했는데 올해는 네덜란드의 꽃시장 자체가 붕괴된 상태다. 판로만 막힌 게 아니다. 수백만명의 전 세계 관광객을 불러모았던 암스테르담 인근 쾨켄호프 튤립축제가 취소돼 역시 2500만 달러(약 304억원) 이상 손실을 보게 됐다. 미국의 소리 방송에 따르면 일부 화훼농은 결국 수출용 튤립 구근을 파내어 소 사료로 쓰고 있다.

이와는 달리 국내 온라인 신선식품 주문 서비스에서는 요즘 튤립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이곳에서는 지난 2월 말부터 튤립을 판매했는데 최근 40일 만에 8만 송이가 팔려나갔다. 꽃값은 품종별로 5송이에 1만2900~1만5900원이다. 한 송이에 2600~3200원꼴이니 네덜란드에 비하면 금값인 셈이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튤립이 잘 팔리는 게 코로나19 덕분이라고 한다. 외출이 어려워지고, 꽃축제도 취소되면서 집에서라도 생화를 보려고 주문이 늘었다는 것이다. 코로나 블루(우울증) 극복에 튤립이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튤립 화훼농도 오랜만에 웃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아니면 어려움을 이겨내는 한국인만의 창의력이 또다시 빛난 것이거나.

손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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