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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신혼여행지’ 제주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제주도는 1980년대 최고의 국내 신혼여행지로 손꼽혔다. 비행기를 이용해야 하고 고급 호텔에 숙박해야 해 부산, 설악산, 경주 등 다른 여행지보다 비쌌지만 평생에 한 번 갈까 말까 하는 여행인지라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8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전면적으로 이뤄지면서 ‘신혼여행=제주도’라는 공식이 깨지기 시작했다. 경제성장과 맞물려 해외여행객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외국으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일도 낯설지 않을 정도가 됐다. 매년 가파른 증가세를 이어가던 신혼여행객의 제주 방문이 92년 54만여명을 최고조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환상의 섬’으로 불리던 제주는 ‘바가지 여행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면서 침체의 길로 들어섰다. 반대급부로 태국의 파타야와 푸껫, 인도네시아 발리 등 동남아시아가 신혼여행지로 급부상했다. 100만여원의 적은 비용으로 밀월여행을 즐기면서 이국적인 문화도 접할 수 있어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 제주도가 신혼여행지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19 초기에는 제주를 찾는 외국인의 60%가량이 중국인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여행객이 급감했으나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해외여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지자 대체지로 주목받고 있다.

숙박업계가 다양한 ‘허니문 패키지’를 선보이며 신혼 커플에게 손짓하고 있다. 제주신라호텔은 ‘스위트 허니문 패키지’를 내놓았다. 2013년 이후 약 7년 만이다. 연회장을 80년대 예식장 같이 꾸며 부모의 결혼사진과 비슷한 ‘뉴트로’ 콘셉트의 사진 촬영 서비스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신혼부부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자 당초 계획보다 2개월 연장해 6월까지 운영한다.

롯데호텔제주도 ‘마이 웨딩 데이 패키지’를 6월 30일까지 판매한다. 프러포즈를 연상케 하는 호텔만의 특별한 이벤트가 포함된 패키지로 로버트 인디애나 작가의 조형물 ‘러브(LOVE)’를 모티브로 한 케이크와 와인이 포함된다. 축하 메시지가 적힌 손편지와 형형색색의 풍선으로 장식된 객실이 신혼부부를 맞는다. 해비치 호텔앤드 리조트 제주는 ‘로맨틱 허니문 패키지’로 신혼부부를 맞고 있다. 제주신라호텔이 스위트 허니문 패키지 예약 현황을 취합한 결과 4월 판매량은 3월 판매량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롯데호텔제주의 4월 신혼 여행객 문의 건수 역시 2월 말 대비 약 35% 증가했다.

항공업계도 전 세계 하늘길이 막히자 제주 노선 등 일부 회복세를 보이는 국내선을 중심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에어서울, 티웨이항공, 진에어 등 항공업계의 김포~제주 노선 탑승률도 90% 가까이 회복됐다. 1만~2만원선까지 떨어졌던 제주행 항공권 가격도 7만~12만원 수준으로 올랐다. 석가탄신일(4월 30일)부터 어린이날(5월 5일)까지 이어지는 4월 말~5월 초 황금연휴가 다가오고 있다. 이 기간 일부 호텔·항공 등 예약률이 오르고 있다. 일부 업체에 한정된 상황이고, 코로나19 상황 진정세를 기대한 ‘대기 수요’일 가능성이 높지만 숨통은 조금씩 트이는 듯하다.

반면 제주행을 선택하는 발길이 조금씩 늘어나자 지역감염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근 제주를 다녀간 타지역 코로나19 확진자들이 유명 관광지 곳곳을 여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제주도 보건 당국이 ‘관광객의 제주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먹혀들지 미지수다. ‘코로나19의 역설’일까. ‘신혼여행 일번지’ ‘대한민국 대표 여행지’였던 제주가 위기를 기회로 삼아 높은 물가와 낮은 가성비, 바가지 요금의 오명을 씻고 꿈의 관광지로 ‘뜨는 제주’가 될지 관심이다.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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