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정신없이 출근한 후 홀로 남겨진 ‘집’이란 공간에 대해 사실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집은 사람이 머무는 공간 이상의 의미가 있다. 집은 세상에 태어나 처음 가족을 만나는 곳이며,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다. 그만큼 집은 우리의 기억과 정서에 연결된 소중한 곳이다. 누군가에겐 봄이 오면 목련과 벚꽃의 아름다움을 알려준 곳, 고단한 몸을 뉠 수 있는 삶의 터전, 삶의 기억을 추억할 수 있는 장소이다. 그동안 이런 집이 고맙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 집이 요즘 재택근무로 일터가 되기도 하고, 온라인 개학을 맞은 자녀들의 교육장소가 됐다. 또 강제적인 자가격리나 자발적인 외출 자제로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져 감정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동안 집의 기능을 단순히 먹고 자는 생활공간으로만 여겨왔다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답답하게 여겨질 수 있다. 집은 삶의 많은 자양분을 만들 수 있는 곳이다. 집은 부부에겐 사랑의 안식처이며 자녀에겐 인생의 훈련장이다. 가족의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다.

지금 정체된 듯한 시간이 양분을 만들고 성장하는 시간이라고 여기면 좋겠다. 땅에 꽃씨가 떨어진 후 당장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그 멈춤의 힘으로 꽃이 피어날 수 있듯이 말이다. 기차는 멈출 힘이 있으므로 달릴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일상의 잠시 멈춤이 미래로 나갈 힘이 될 것이다. 백무산 시인의 ‘정지의 힘’이란 시를 읽으며 속도를 늦추거나 멈춘 그 시간이 결코 손해가 아니란 생각을 했다.

‘기차를 세우는 힘, 그 힘으로 기차는 달린다/ 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그로 인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안다/ 무엇이 되지 않을 자유,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된다/ 세상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린다/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달리는 이유를 안다/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시 ‘정지의 힘’)

최근 미국과 일본에서 ‘코로나 이혼’이란 신조어가 퍼지고 있으며 강제격리를 먼저 경험했던 중국에선 이혼이 늘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재택근무, 외출 자제로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이 늘면서 생긴 갈등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인 중엔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평소 얼굴 보기 힘들었던 가족들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가족 관계가 친밀해졌다는 이들도 있다. 반면 서로에 대한 지나친 간섭과 잔소리로 관계가 더 멀어졌다는 이들도 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수많은 가정이 해체됐지만, 반대로 더 결속된 가정도 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결과는 왜 다른 것일까.

이에 대해 가정사역자들은 의사소통이 잘 되는 가정은 위기 때 더 결속하고 성장한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행복한 가정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이 ‘의사소통’이라고 말한다. 가족간에 의사소통이 단절됐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를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은 경청이다. 특히 부모가 자녀의 말, 부부가 배우자의 말을 어떻게 들어주느냐가 관계 회복의 출발점이란 것. 경기 침체로 인한 불안감 때문에 가족 관계 회복이란 말이 고리타분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어차피 주어진 시간은 같다. 가족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 ‘꽃씨를 심는 일’이 될 것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로 인해 가정의 기능이 더욱 중요해졌다.

우리 삶에는 공통으로 유년 시절을 보냈던 기억의 집, 지금 사는 현실의 집, 살아보고 싶은 꿈속의 집이 있다. 하지만 집이 재테크의 수단이 돼버리면 집이 품고 있는 소중한 것들에 관한 관심이 멀어진다. 집이란 공간이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이다. 집은 가족 구성원들이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1인 가구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집에서 생각의 씨앗을 심고 ‘지금 여기’를 사유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을 답답해하기보다 씨앗을 품고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자. 이 시기가 지나면 우린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이지현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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