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광희 (11) 호텔 지하에 의상실 열고 디자이너로 첫 발

부모 보살핌 없이 지내던 학창시절, 절제하며 모범생으로 지내…졸업 후 국제복장학원 입학

이광희 디자이너가 1971년 서울 이화여고 시절, 교정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수많은 고아들을 돌보시던 부모님은 당신 자식들을 광주 큰집에 보내 자라게 했다. 자식들과 편애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나도 초등학교 6학년 때 광주로 간 뒤 부모님의 보살핌 없이 해야 할 일들을 홀로 알아서 했다. 학교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모범생이었다. 전남여자중학교 2학년 때였다. 선생님이 선행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니 시상식에 참석하라고 했다. 학교에서 주는 상이 아니었다. 지금은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이름을 바꾼 11월 3일 학생의 날을 맞아 전라남도 지역 학생 중 한명만 뽑아 주는 상이었다. 그런 큰 상인데도 받지 않겠다며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단순한 반항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왜 그런 상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크고 작게 남을 도와주기는 했지만 굳이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었다. 더구나 성경은 ‘오른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는데 도움을 받은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면 상을 받는 것이 괜스레 쑥스러웠다.

서울에 올라와 이화여자고등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를 다니며 일찍 어른이 된 것 같다. 목사의 자녀라는 책임감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도 갖게 됐다. 그때 스스로 여러 가지 절제 시험을 했다. 기억에 남는 테스트는 일주일간 묵언으로 지내보기였다.

언젠가 함석헌 선생님이 아버지께 편지를 쓰신 적이 있다. 아버지의 성함, 이준묵 중 마지막 ‘묵’이 좋다는 내용이 있었다. 바로 한자의 ‘잠잠할 묵(默)’이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 위해 평소 말을 적게 하고 절제하셨다. 어머니도 아버지와 침묵하는 모습이 닮아있었다. 입술로 말하지 않고 몸으로, 행동으로, 실천으로 말씀하셨다. 나도 말만 많이 하고 실천하지 않는 어른이 되지 않도록 가끔 말 안하고 일주일간 지내기를 시험해보곤 했다.

이 밖에도 추운 겨울 외투를 입지 않은 채 교복만 입고 추위를 견뎌보기, 똑바로 앉아서 두세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기 등 스스로 절제하는 훈련을 했다. 어린 마음에 나름 치열한 훈련이었고 그때의 경험 덕에 절제하는 습관이 몸에 배이게 됐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대학 입학을 포기하려고 했다. 당시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대학에 가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평생의 직업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졸업 후 시집 잘 가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의미로 대학에 간다는 게 나로서는 회의가 들었다.

마침 큰 오빠가 졸업 후에도 사회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실용학문을 배우라며 이화여대 비서학과를 추천했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 생활엔 큰 흥미가 없었다. 당시 인기 있던 ‘메이데이 축제’에도 가지 않고 책만 읽었다. 졸업 후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다 국제복장학원에 들어갔고 졸업 후 1979년 하얏트호텔 지하에 의상실을 열었다. 그렇게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섰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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