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몸살로 입맛이 떨어질 때면 늘 아빠가 사오시던 통닭 한 마리가 있었다. 비록 찌든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허름한 봉투에 담겨 있었지만 그것은 당시 일반적 전기구이가 아닌 최신식 프라이드 치킨이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적당한 수분을 함유해 부드럽게 씹혔던 육질과 새콤달콤한 무의 아삭한 식감이 지금까지도 내 기억의 깊은 중추에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닭 한 마리 속 다양한 부위가 주는 맛의 미묘한 차이에 놀라며 나만의 취향이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누구는 고소한 날개를, 또 누구는 퍽퍽한 가슴살을 좋아한다지만 대개 닭다리가 가장 맛난 부분이다. 쫄깃한 살집과 적당한 기름기가 씹는 맛을 더해주었다고 할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닭 한 마리에서 나올 수 있는 다리는 고작해야 두 개다. 4인 가정에서 닭 한 마리를 함께 먹는다면 구성원의 절반만 닭다리를 차지할 수 있고, 나머지 절반은 내색은 못하지만 눈물을 머금고 포기할 수밖에 없다. 예전이라면 한 집안의 가장인 아빠가 다리 하나를,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장차 집안의 미래를 책임질 큰아들 몫이었다. 그렇지만 세상은 몰라보게 바뀌어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닭다리가 아이들 몫으로 돌아가고, 뼈빠지게 고생한 부모의 몫은 더 이상 아닌 듯싶다.

그래서 닭다리를 맘껏 먹고자 하는 수요는 거기에 걸맞은 공급을 낳았고, 슈퍼 계육코너에 가면 특정 부위만 모아 포장해 파는 상품을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게 됐다. 더 이상 우리는 닭다리를 가지고 서로 눈치볼 필요도 없고, 아쉬울 이유도 없다. 그냥 자기 몫의 닭다리만 열심히 뜯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이 인간의 심리인지 닭다리는 날개랑 가슴살과 함께 놓여 있을 때 먹고 싶은 로망이지, 다리만 듬뿍 쌓여진 접시엔 예전만큼 손이 먼저 가지 않는다. 오늘 큰맘 먹고 닭을 튀겼다. 몸살로 잃었던 식욕이 돌아왔는지,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황훈정 재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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