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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 낯 뜨거운 자화자찬은 좀 미루시길

이도경 사회부 차장


#장면 하나. 초·중·고교 학생 400만명이 온라인 등교를 시작한 이틀째인 지난 17일 오전 9시44분. 교육부는 예정에 없던 ‘코로나19에 따른 주요 국가별 원격교육 현황’이란 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한다. 정부가 미국 프랑스 중국 일본 싱가포르에 나가 있는 한국학교와 한국교육원, 재외공관 웹사이트 검색 등으로 생산한 자료다. 읽어 내려가다 보면 5개국은 악전고투 중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5~8% 학생이 원격수업에 접속 못하고 있어”(프랑스), “LA교육구 온라인 교육 개선 중이나 초등생 여전히 접속 어려움”(미국), “4월 초 개학하는 일본은 정부 차원 원격수업 계획 발표 없음”(일본). 호기롭게 개학했다 낭패 본 싱가포르 사례도 빼지 않았다. 한국 사례가 마지막에 덧붙여진다. “국가 차원의 체계적이고 신속한 정책 지원을 통한 원격수업 운영 활성화” “민·관·기업의 유기적 협력으로 원활한 원격수업 준비·운영”이란 찬사가 붙어 있다.

#장면 둘. 초등학교 4~6학년, 중·고교 1·2학년 312만명이 원격으로 정규 수업을 시작한 16일 오후 3시30분. 정부 영상회의 시스템인 ‘온-나라 PC영상회의’를 통한 2차 온라인 개학 상황 브리핑이 열렸다. 교육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 화상 브리핑을 열고 있다. 교육부는 공공 영역에서 제공하는 원격수업 시스템을 “오늘 전반적으로 원활하게 서비스됐다”고 평가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성공적”이라고 했고, 정부 측 브리퍼로 참석한 EBS 관계자는 “NHK 등 외신에서 취재 올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일을 했다”며 뿌듯해 했다. 자화자찬이 이어지자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기자들은 오전 원격수업 현장에서 빚어진 여러 난맥상을 접한 뒤 브리핑에 참석하고 있었다. 공격적인 질문이 이어지자 교육부가 정리에 나섰다. “관점의 차이”로 현장의 불편함은 일축됐다.

4·15 총선 다음 날이자 2차 온라인 개학 첫날에 접촉한 교육계 인사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여당 4·15 총선 승리의 숨은 공로자는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아니냐.” 기자도 고개를 끄떡였다. 유 부총리는 정성스럽게 관리하던 지역구를 넘겨주고 교육부에 남았다. 재선 의원인 정치인 입장에서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어쨌든(여권 지도부에서 그를 대체할 인재풀이 없으니 교육부에 남아 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만약 그가 지난 1월 선거판에 뛰어들었으면 교육부는 리더십 공백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를 맞아야 했을 것이다. 아이들 문제는 언제나 파괴력이 강하다. 국내 코로나19 사태 초기 중국인 유학생 문제부터 대구·경북 감염병 확산과 유·초·중·고교 개학 연기에 이은 1, 2차 온라인 개학까지 일련의 고비 상황에서 야당에 심각하게 꼬투리 잡히지 않은 것만으로도 공로가 적지 않을 것이다. ‘월화수목금금금’에 ‘도시락 저녁 회의’가 일상이었던 박백범 차관 이하 교육부 직원들의 노고도 알 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그러니 이제 자화자찬은 잠시 접었으면 한다. 선거도 끝났다. 정부가 강조하지 않아도 원격수업이 불가피하고, 여기저기 문제가 터지는 걸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있다. 학생·학부모·교사는 묵묵히 고통을 견디고 있다. ‘부모 개학’이란 말을 실감하며 인내하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대견해 하는 정부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할 뿐이다. 자녀가 뒤처질지 모르는데 “원격수업은 조금 일찍 온 미래” “미래교육으로 가는 기회” 같은 말은 공허하게 들린다.

온·오프라인 교육이 정착돼 공교육 경쟁력이 높아지면 칭찬은 알아서 따라올 것이다. ‘없어 보이는’ 말잔치 말고 예컨대 원격수업의 빈틈을 파고드는 사교육 대책을 논의해보면 어떤가. 가뜩이나 문재인정부 들어 사교육 지표가 역대 최악으로 치닫고 있지 않던가.

이도경 사회부 차장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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