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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칼럼] 사이비 보수는 끝났다


중도층 정서를 아예 못읽고 공감능력과 전략이 없으며
보수의 덕목인 품격마저 잃어

비대위 꾸리고 늘 보던 사람들 들어선다고 바뀌어지나
당 해체하고 성찰해야 진정한 보수 재건할 수 있어

전국 단위 선거 4연패, 민주화 이후 최악의 선거 결과, 2004년 탄핵 총선보다 못한 성적. 보수 진영이 이렇게 완벽하게 진 적은 없었다. 선거는 끝났지만 왜 그랬는지 정산은 해봐야 한다. 그게 정치의 본질이다. 특히 보수 진영은 내부에서 격하게 따져봐야 한다.

보수 진영은 세 가지 측면에서 완벽하게 패배했거나 무능했다. 우선 중도층이 돌아섰다. 수도권 선거 결과가 말해준다. 영남 대부분과 서울 강남에서 쪼그라진 형태로 강성 보수층이 결집했을 뿐이다. 왜 그런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실망한 합리적 보수층과 중도층은 대거 문재인 정권을 지지했다. 지금 정권은 이른바 촛불 민심이 오로지 자기편에게만 있다고 프레임을 형성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그건 구체제와 낡은 정치를 혁신하라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보수 진영은 박근혜 탄핵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그럴 의지와 능력이 부족했으며, 오히려 극우 목소리에 기대는 태도를 보였다. 중도층의 강력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거나 못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볼 때 초기에는 우호적이었다 정권의 독주와 포퓰리즘에 지지를 철회했던 중도층은 이런 보수의 행태에 선택 대상에서 미래통합당 후보를 아예 제외했다고 볼 수 있다. 최선이나 차선 선택이 아니라 최악을 배제한 투표 결과다. 물론 훌륭한 의료시스템과 시민의식 덕택으로 여권이 코로나19의 덕을 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는 결과의 책임이다. 그걸 운이라고만 돌리는 것은 면피용이다. 전술적으로 바이러스 전쟁을 잘 활용한 것이다.

둘째로 보수 진영의 공감 능력은 제로다. 어쩌면 이렇게 완벽하게 세대공감, 미래공감이 없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세월호 막말이나 품격 없는 이들의 공천이 극우 보수에는 공감을 일으켰을지 모르겠지만 수도권 선거는 망가뜨렸다. 초기 메시지 혼선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코로나19에 감염자 추적, 동선 공개 같은 조치를 취해 유권자들로부터 점수를 받았다. 강제적 조치라 할지라도 신속성, 투명성, 쌍방향 소통으로 공감을 얻은 것이다.

골수 우파 유튜버 중심의 무조건 비판은 비호감이었다. 무엇보다 미래를 말하지 못했다. 이렇게 달라진다는 없고, 좌파포퓰리즘만 퍼 나르는 건 전략이 없었다는 얘기다. 여론주도층이자 스윙 보터가 많은 40대 후반부터 50대 후반까지의 중장년층은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이들이 동시대 86세대 정치인들의 일부 독점적 퇴행적 정치 행태는 강력히 비판하지만, 87체제와 촛불을 거치면서 낡은 것에 대한 거부감이 얼마나 큰지를 판단하지 못했다. 정치적 꼰대는 설 땅이 점점 없어지고, 나이 들면 보수라는 기존 정치문법도 인구구조상 이젠 틀릴 가능성이 크다.

셋째, 보수는 품격이 없어졌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외면당했다. 품격과 헌신, 자기희생은 보수의 가치를 발현하는 기본적 덕목이다. 보수가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힘은 품격에서 나온다. 상대적으로 진보는 좀 전투적이고 이상적이다. 막말에 비호감에 품격이 없으니 권력 잃은 야당인데도 심판하겠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샤이 보수’는 보수라고 밝히는 게 창피하니 생긴 것 아닌가. 보수는 그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보수주의는 극단을 배격하고 중도와 중용을 추구한다. 필요한 변화를 조심스럽게 시도한다. 합리적 중도층이 외면하고,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며, 품격마저 없으면서 보수라고 주장하는 건 사이비 보수다. 2년 전 보수가 지방선거에서 대패했을 때 ‘망해도 제대로 망해야 다시 살 수 있다’는 칼럼을 썼다. 보수 세력이 성찰하지 않고 무너진 품격을 갖추지 않으면 다음 선거도 가망이 없다고 했다. 이후 보수는 성찰하지도, 품격을 되찾을 생각도 안 했다.

보수가 이렇게 망가지면 한국 정치가 망가지고, 국민이 불행하다. ‘나는 보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보수 세력이 다시 그렇게 일어서야 견제와 균형의 정치가 작동한다. 과거 보수 정치가 독주했을 때 한국 정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진보 세력이 독주해도 마찬가지다. 보수가 당에 한낱 비상대책위를 꾸려 똑같은 방식으로 리모델링한다고 나아질까. 당을 해체하고 사이비 보수를 허물고 재건축해야 한다. 아무리 봐도 지금 사람들로는 안될 것 같다. 성찰과 재건의 계기를 만들기 바란다.

편집인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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