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소렌티노 감독의 2015년 작품 ‘유스(Youth)’에 ‘수미 조’가 깜짝 등장한다. 영국 여왕을 위한 특별공연에서 조수미가 주제가를 부른 것이다. 그가 세계적 소프라노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세계’를 대표할 줄은 몰랐다. 조수미는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지만 상을 받지는 못했다. 그 한을 올해 봉준호 감독이 풀어주었다. 영화 ‘기생충’으로 작품상을 비롯해 4관왕을 휩쓸었던 것이다. 조수미는 멋진 ‘복수’를 해준 봉 감독에게 축하인사를 보내며 “대한민국 만세다”라고 했다.

그렇다. 살기가 어렵고 걱정이 많다보니 우리 스스로 ‘헬조선’이라고 자학하지만 외국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철학자 헤겔이 말했듯이, 다른 사람이 보는 우리의 모습이 우리의 실체적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때문에 온 국민이 고통을 겪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물 만난 듯 그 이름을 전 세계에 날리고 있다. 해외 유수의 언론들이 ‘한국이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었다’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문제는 정치다. 잘나가는 대한민국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다. 어느 유명 기업인이 “한국의 기업은 2류, 정치는 4류”라고 꼬집었던 것이 25년 전 일이다. 그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만2000달러 정도였다. 지난해는 그 수치가 3만 달러를 넘었다. 2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 세계 12위의 경제 강국이 됐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한국은 이렇게 커 버렸다. 그런데 정치만 뒷걸음질이다. 그 퇴행의 증상이 여간 악성이 아니다.

이를테면 진보, 보수 정당 가릴 것 없이 위기만 닥치면 비상대책위원회를 가동한다. ‘비상’이 일상화되고 있는데 비대위가 무슨 소용일까. 정당 이름도 연례행사처럼 바꾼다. 현 집권당은 지난 25년 동안 7번 이상 이름을 고쳤다. 야당은 5번 간판을 바꿔 달았다. 올해 2월 만들어진 미래통합당이 과연 그 이름을 얼마나 지킬지 두고 볼 일이다. 이것이 한국정치의 민낯이다. 부끄러울 뿐이다.

더 심각한 것은 정치인들이 패륜과 배덕(背德)을 예사로 여긴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겉으로나마 민주주의니 ‘역사의 도구’니 같은 대의(大義)를 내걸었다. 지금은 정책도 비전도 없이 그저 원한과 증오의 패싸움만 벌일 뿐이다. 거짓말을 하고도 태연하다. 위선이 유능함의 표상이 돼 버렸다. 아이들이 보고 배울까 걱정이다.

국가 운영의 기본인 선거법을 국회 스스로가 짓밟지 않았던가. 연동형비례대표제, 이제 어쩔 것인가. 세계 정치사의 코미디가 된 위성비례정당은 또 어쩔 것인가. 그런데 그 위성정당을 원내 교섭단체로 만들기 위한 꼼수를 부린단다. 총선 이후에 해체하겠다던 약속을 뒤집는 것이다. 이런 집단에 정당보조금을 주어야 하나. 국민 혈세가 그렇게 쓰여도 되는가. 선거가 끝났다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넘어갈 수는 없다. 한국 정치의 추락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우선 정치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복잡해지고 있다. 전문가도 자기 분야 외에는 잘 알 수가 없다. 능력 안 되고 욕심만 많은 정치인들에게서 권력을 대폭 회수해야 한다. 전방위 분권화가 답이다. 청와대가 행정부 위에 군림하는 체제를 뜯어고쳐야 한다.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소신껏 일하게 내버려 두라. 관료에게 영혼을 돌려주자. 기업인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일할 수 있게 도와주자. 개헌을 하든 제도를 바꾸든,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일을 정치인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국민이 강제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절대 스스로 제 밥그릇을 내놓지 않는다.

문제는 역시 국민이다. 국민이 받아주니 저런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정치가 저질스러워지는 것은 세계적 현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같은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던가. ‘진실 따위가 뭐가 중요해?’라고 되묻는 시대를 맞아 정치가 ‘야수화’되고 있다. 도리는 퇴색하고 원색적 욕망만 꿈틀댄다. 한국이 그런 반진실 정치의 선봉이 돼 버렸다. 그 대가를 우리는 지금 치르고 있다.

한국 정치가 이 모양으로 몰상식의 극치를 달리게 된 것을 국민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국민이 제대로 응징하지 않고 방관한 까닭에 저렇게 되어 버린 것도 사실이다. 시인 서정주는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했다. 한국 정치가 5류, 6류 정치로 타락한다면 국민의 책임은 8할 이상이다.

서병훈 숭실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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